[한경데스크] 수수료 낮추면 서민 좋아지나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떨어뜨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수수료율만 낮아지고 종전에 받던 서비스 수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어떤 형태로든 서비스의 질도 덩달아 떨어진다.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가고,약자일수록 그 부담이 커진다.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는 '우리가 봉이냐'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발에서 시작됐다. 돈 많은 대형마트에는 매출액의 1.5%를 가맹점 수수료로 징수하면서 불쌍한 음식점에는 왜 2%가 넘는 수수료를 매기냐는 것이다.

수수료율이 낮아지면 카드회사들은 그 비용을 다른 곳에 전가하려 들 것이다. 가맹점 카드단말기를 관리하는 밴(VAN)사업자에게 주는 수수료(건당 100원가량)를 낮추는 방안을 생각해보자.밴사업자는 실비에 약간의 이익을 얹어 장사하는 영세 사업자다. 부담을 전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카드사들은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카드포인트 혜택을 줄이려 들 것이다. 예컨대 1만원 미만의 소액 결제에는 포인트를 주지 않거나,소액 결제를 자주 하는 계층에 카드 발급을 줄이거나,연회비를 올리는 등의 조치를 취할 공산이 크다. 부실률도 낮춰야 한다.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의 카드발급이 어려워질 것이다.

백화점들은 '입점 수수료를 차별하지 말라'는 공정거래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 명품에 적용하는 수수료율과 동일하거나 근접하는 수준으로 국내 업체들의 수수료율을 낮추라는 것이다. 낮은 수수료율은 백화점이 해당 업체를 유치하려고 난리를 쳤고,높은 수수료율은 해당 업체가 백화점에 들어가려고 난리를 쳤다는 증거일 뿐이다. 수수료율 폭을 줄인다 해서 그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입점업체에 동일한 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면 배짱부리는 해외 명품업체를 유치할 수 없고,판매량이 적지만 40~50%의 수수료를 내서라도 백화점에 꼭 들어가야겠다는 중소업체의 소원도 풀어줄 수 없다. 모든 백화점들이 적당히 잘 팔리는 검증된 대기업 상품만 팔려 할 것이다. 신생 중소기업들은 백화점에 납품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송금 · 인출 수수료는 어떨까. 지금은 늦은 밤 은행지점에 가지 않더라도 돈을 쉽게 꺼내거나 송금할 수 있을 정도로 ATM이 많다. 하지만 수수료율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지면 수익이 적은 곳에 있는 ATM은 설 땅을 잃게 된다. 새로 설치하려던 곳들 중 상당수도 포기해야 한다. 그 피해는 사람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도시나 농어촌에 집중될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이익이 적정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 ATM이 늘어 포화상태가 되고 소비자들은 더 편리하게 사용하게 될 텐데,인위적으로 수수료를 낮춤으로써 편리함은 그만큼 사라지게 된다.

가격이 높으면 덜 팔리고,초과이익을 많이 남기면 경쟁자가 더 많아지는게 시장의 이치다. 당장 어렵다고 해서 시장에 인위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조정기능과 공정함을 해친다. 정치적인 개입이 시작되면 결국 피해를 전가할 능력이 없는 진짜 사회적 약자가 손해를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문제는 시장에서 풀어야지,길거리에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현승윤 경제부 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