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 시장의 재고가 사상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에 △공급과잉에 따른 경쟁 격화 △중국과 일본의 저가 공세 △원자재값 상승 △환율 급등 등 다양한 악재가 철강 업계를 짓누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상당수 철강사들이 3분기에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철강재 유통재고 사상 최대

철강재 유통 재고 사상 최대…"車 아니면 팔 데가 없다"
23일 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100여개의 1차 철강유통 대리점들이 보유하고 있는 판재류 재고물량은 125만3000t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달보다 22.3% 늘어났다. 철강 유통재고는 지난 2월 이후 8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초 포스코 등 주요 철강업체들이 금융위기 여파로 인해 감산에 들어갔을 때의 재고(122만8000t)보다도 더 많다. 건설과 조선 등 철강재를 많이 사용하는 수요산업의 위축이 장기화한 데 따른 것이란 지적이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지난 8월부터 재고가 급속히 늘어나 판재류 유통재고 조사를 시작한 2004년 1월 이후 가장 많은 재고가 쌓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한 대형 철강유통업체 관계자는 "2~3년 전만 해도 연간 20만t가량의 판재류를 취급했으나 올 판매량은 15만t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동차 이외엔 경기가 괜찮은 분야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철강업계 '5중고'에 시름

유통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이 가장 크다. 가전 · 건설 · 조선업 등 수요업계의 부진으로 인해 '산업의 쌀'인 철강재가 쌓이고 있는 양상이다. 반면 국내 공급물량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현대제철이 새롭게 고로 사업에 뛰어든 데다 포스코도 포항 · 광양 제철소 증설 등을 통해 쇳물 생산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업계에선 2014년께 220만t가량의 공급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과 중국 철강사들이 지난 2분기부터 수출 단가를 자국 내수 판매가보다 최대 30% 싼 가격으로 낮춰 덤핑수출에 나선 것도 국내 업체들의 판매 부진을 부채질하고 있다. 저가 수입재가 늘어나면서 국내 유통시장에서는 기준가격보다 10~15%가량 싸게 거래될 정도로 가격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원료값은 상승해 업체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철광석과 유연탄값은 2년 전과 비교해 3배가량 올랐다. 하지만 업체들은 "정부의 가격 인상 억제 정책으로 원료값 인상분을 제품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왔다"고 항변한다. 환율 급등도 악재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원료 도입 물량이 큰 업체들의 환손실 규모가 대폭 늘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들어서만 8000억원 정도의 환손실이 생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철강재 유통 재고 사상 최대…"車 아니면 팔 데가 없다"

◆3분기 도미노 적자전환 우려

철강업체들의 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올 3분기에 3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환손실로 인해 당기순손실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동국제강동부제철 등도 3분기에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1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포스코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74.74% 감소한 2485억원으로 집계됐다. 최종태 포스코 사장은 향후 실적 전망에 대해 "4분기에도 실적이 악화돼 영업이익이 1조원에 못 미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문제는 내년 상황도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의 '2012년 경제 산업 전망 및 이슈'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철강산업은 글로벌 경기 불안과 함께 국내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이 이어지면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최 사장은 "내년 3분기 이후에나 시장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내년에도 연간 투자규모는 올해보다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수/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