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가을] 실존 영웅들의 이야기 史記, 2천년 지나도 ‘감동 그대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원중 교수 세계 유일 완역…왕조· 제후 ·사회변화 한눈에
밤에 한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모두 초나라 노래를 부르니 항우가 크게 놀라서 말했다.
“한나라 군대가 이미 초나라를 얻었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다지도 많은가?”
항우는 밤에 일어나 막사 안에서 술을 마셨다. 항우에게는 이름이 우(虞)라고 하는 미인이 있었는데, 총애하여 늘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추라고 하는 이름의 준마가 있었는데 늘 타고 다녔다. 이에 항우는 비분강개하여 직접 시를 지어 노래로 읊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한데, 때가 불리하여 추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사기 본기’ 중 ‘항우 본기’에서)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한편의 대하소설 같다. 얽히고설킨 실존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시어처럼 반짝이는 문장은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기원전 86?)의 《사기(史記)》 말이다.
사기는 중국 최초의 정사(正史)이며 동양 역사학의 전범으로 불리는 역사서. 전설상의 중국 시조로 여겨지는 황제(黃帝)에서부터 사마천 당대 한(前漢)나라까지의 역사를 정리했다.
기전체(紀傳體) 형식으로 쓰인 첫 역사서로도 유명하다. 기전체는 한 왕조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기록하는 방식이다. 《사기》는 황제에 대한 기사인 본기(本紀) 12편, 제후의 역사를 담은 세가(世家) 30편, 제왕이나 제후 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개인들의 역사를 서술한 열전(列傳) 70편, 통치제도·문물·경제·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한 서(書) 8편과 본기에 나오는 제왕·제후들의 흥망을 정리한 연표(年表) 1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돼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太史令)으로 있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생식기를 절단하는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이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 지 20여년 만에 완성했다.
《사기(史記)》 130편이 모두 완역, 최근 민음사를 통해 출간됐다. 김원중 건양대 교수가 총 4000쪽 분량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1995년 《사기 열전》 번역을 시작한 이래 16년 만이다. 한 사람이 《사기》를 완역한 것은 세계적으로 김 교수가 유일하다. 이번에 나온 책은 《사기 서(書)》와 《사기 표(表)》 두 권이다.
《사기 서》는 예의 음악 군사 역법 천문 봉선 치수 경제 등에 관한 이론 및 역사를 담고 있다. 사회 제도에 주목해 이상과 현실, 변혁과 민생 문제 등을 보여준다. 무제의 통치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날카롭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명분 없는 전쟁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길”이며 “개인의 사욕을 위해 민생은 등한시한 채 역법 개혁을 했다”고 무제의 무치(武治)를 비판한다. 책에는 《사기》집필 배경이 잘 드러나 있는 ‘보임소경서’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사마천은 자신이 궁형을 받게 된 사건의 시말과 궁형의 치욕 속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이를 보상받으려는 생각으로 《사기》를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기 표》는 황제부터 한 무제까지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다. 본기 세가 열전에 분산돼 있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표 자체로도 독자성을 인정받는다. 사마천이 표 안에 자신의 역사의식을 녹여내 사기 전편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네 번째 편인 ‘진초지제 월표’는 진(秦)나라 멸망 뒤의 진섭과 항우의 등장, 한 고조 유방이 제위를 얻기까지 8년간의 시간을 월별로 기록, 급박했던 정세 변화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사마천이 쓴《사기》의 난해한 문장에 휘둘려 끝모를 번민과 고뇌에 휘감기곤 했다”면서도 “그 내용이 200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믿었기에 완역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한나라 군대가 이미 초나라를 얻었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다지도 많은가?”
항우는 밤에 일어나 막사 안에서 술을 마셨다. 항우에게는 이름이 우(虞)라고 하는 미인이 있었는데, 총애하여 늘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추라고 하는 이름의 준마가 있었는데 늘 타고 다녔다. 이에 항우는 비분강개하여 직접 시를 지어 노래로 읊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한데, 때가 불리하여 추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사기 본기’ 중 ‘항우 본기’에서)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한편의 대하소설 같다. 얽히고설킨 실존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시어처럼 반짝이는 문장은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기원전 86?)의 《사기(史記)》 말이다.
사기는 중국 최초의 정사(正史)이며 동양 역사학의 전범으로 불리는 역사서. 전설상의 중국 시조로 여겨지는 황제(黃帝)에서부터 사마천 당대 한(前漢)나라까지의 역사를 정리했다.
기전체(紀傳體) 형식으로 쓰인 첫 역사서로도 유명하다. 기전체는 한 왕조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기록하는 방식이다. 《사기》는 황제에 대한 기사인 본기(本紀) 12편, 제후의 역사를 담은 세가(世家) 30편, 제왕이나 제후 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개인들의 역사를 서술한 열전(列傳) 70편, 통치제도·문물·경제·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한 서(書) 8편과 본기에 나오는 제왕·제후들의 흥망을 정리한 연표(年表) 1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돼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太史令)으로 있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생식기를 절단하는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이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 지 20여년 만에 완성했다.
《사기(史記)》 130편이 모두 완역, 최근 민음사를 통해 출간됐다. 김원중 건양대 교수가 총 4000쪽 분량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1995년 《사기 열전》 번역을 시작한 이래 16년 만이다. 한 사람이 《사기》를 완역한 것은 세계적으로 김 교수가 유일하다. 이번에 나온 책은 《사기 서(書)》와 《사기 표(表)》 두 권이다.
《사기 서》는 예의 음악 군사 역법 천문 봉선 치수 경제 등에 관한 이론 및 역사를 담고 있다. 사회 제도에 주목해 이상과 현실, 변혁과 민생 문제 등을 보여준다. 무제의 통치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날카롭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명분 없는 전쟁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길”이며 “개인의 사욕을 위해 민생은 등한시한 채 역법 개혁을 했다”고 무제의 무치(武治)를 비판한다. 책에는 《사기》집필 배경이 잘 드러나 있는 ‘보임소경서’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사마천은 자신이 궁형을 받게 된 사건의 시말과 궁형의 치욕 속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이를 보상받으려는 생각으로 《사기》를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기 표》는 황제부터 한 무제까지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다. 본기 세가 열전에 분산돼 있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표 자체로도 독자성을 인정받는다. 사마천이 표 안에 자신의 역사의식을 녹여내 사기 전편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네 번째 편인 ‘진초지제 월표’는 진(秦)나라 멸망 뒤의 진섭과 항우의 등장, 한 고조 유방이 제위를 얻기까지 8년간의 시간을 월별로 기록, 급박했던 정세 변화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사마천이 쓴《사기》의 난해한 문장에 휘둘려 끝모를 번민과 고뇌에 휘감기곤 했다”면서도 “그 내용이 200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믿었기에 완역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