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가을] 중국 선사들이 걸어간 구도의 여정

한국 시단의 거목으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78). 그는 1952년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출가해 효봉선사의 상좌로 10여년간 수도 생활을 했다.

불교 구도소설 《선(禪)》(김영사)은 고은 시인이 선불교의 역사와 선의 세계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1995년 창비를 통해 2권으로 나왔던 이 책이 16년 만에 한 권으로 재발간됐다.

한국 구도문학의 지평을 한 차원 넓힌 이 소설은 불교 선종의 초조(初祖) 달마부터 6조 혜능까지 법통이 계승되는 과정을 유려한 호흡으로 그려낸다. 중국 선종 6대조 선사들의 치열한 수행과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시인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에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 더해져 깊은 울림을 전한다.

소설은 반야다라를 스승으로 삼고 수행하던 남인도 출신 달마가 중국으로 향하는 여정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달마는 참선을 지향하며 선종을 창시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무리에게 독살당하고 만다. 고은 시인은 2조 혜가, 3조 승찬 등으로 차례로 넘어가면서 불법의 세계로 안내한다. 또 이런 일화를 통해 점수와 돈오의 차이와 함께 북종선과 남종선의 특색도 소개한다. 딱딱한 선어록과 선사들의 게송, 선문답도 실감나게 풀어낸다.

이 책은 관념과 상징으로만 화석화된 불교와 선의 세계를 대하소설로 엮어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김영사는 앞으로도 ‘고은 전집’(전 38권)에 실린 글을 골라 총 4권의 선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선집은 선(禪) 시선집,소설 화엄경, 기행문 ‘나의산하 나의 방랑’ 등이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