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장마당과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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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그런데도 단속은 형식에 그친다. 단속반이 물건을 뺏으려 하면 "날 죽여라"며 대들기 때문이다. 단속요원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메뚜기로 나서는 것도 단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당 간부들이 장사 잘되는 자리를 검열 명목으로 강탈하기도 한다. 평양의 '하당 장마당' 부근에는 메뚜기들이 1㎞ 남짓 골목골목 앉아 물건을 팔고 있단다. 북한 내에는 이런 장마당이 300여 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장마당엔 온갖 물건들이 나온다. 식품과 옷이 주류지만 중고 휴대폰과 노트북,MP3,외국 영화나 드라마 등도 있다. 최근엔 북한 여성들의 음란 동영상을 제작 · 판매하는 업자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섹스 알'로 불리는 음란물은 일반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된단다. 달러와 위안화를 바꿔주는 환전꾼들도 다시 들끓는 모양이다. 이들은 전주(錢主)를 중심으로 8~10명이 한 조가 돼 장마당에서 호객행위를 한다. 단속요원들을 뇌물로 매수해 잘 걸려들지 않는데다 걸리더라도 전주는 다치지 않고 중간 호객꾼만 처벌받는 게 고작이란다.
한국 제품은 체제유지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더 심하게 막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거쳐 끊임없이 들어간다. 전자제품에서부터 커피믹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상표를 적당히 지워서 팔아 제법 큰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상표를 완전히 지우면 제값을 못 받는 탓이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월 600만개씩 간식으로 주는 초코파이를 현금이나 라면으로 대체해달라는 북한 측 요구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식량사정이 다급해서라는 분석도 있으나 장마당에서 초코파이가 비싸게 팔리는 걸 방치하면 체제에 부담이 될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김정일 위원장이 동납내기 독재자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를 보면서 뜨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례없는 3대 세습을 위해 별 것에 다 신경을 써야 하는 북한이 딱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