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분쟁 부추길 '대규모 유통업법'
경제학의 금언(金言)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가설이 있다. 현실이 '사전적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정부의 '탐 하킨 법'이 그 전형이다. 미성년 노동자가 만든 의류의 미국 내 반입을 금지시킨 이 법은 방글라데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는데,법이 발효되면서 해고된 미성년 노동자는 가정과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금융위기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은 2009년 오바마 정부에서 있었던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인상에 환호하던 근로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 등에 의해 발의된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안(대규모 유통업법)'이 국회 법사위에 넘겨졌다. 주요 내용은 '거래관행 개선,법위반 행위 감시 강화,입증책임 전환'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소비자 후생과 시장의 역동성을 크게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입법 취지인 '납품업체 보호'에도 역행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법안은 대형 유통업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납품업자들의 이익을 침탈하는 우월적 사업자로 간주한다. 인식오류는 정책과잉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유통업체를 철저하게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납품업체로의 '상품 반품 금지(10조),판매촉진비용 부담전가 금지(11조),납품업자 종업원 사용 금지(12조)' 그리고 '유통업체로의 입증책임 전가'가 그것이다.

이 같은 조항은 유통업체와 납품업자 간의 '사적 자치'에 의한 판촉활동에 직 · 간접적으로 작용해 판촉활동을 필히 위축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판촉행위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자발적 행위로 경쟁 촉진적이다. 판촉활동이 제약되면,신규 납품업자의 진입이 봉쇄되는 등 시장의 역동성은 저해된다. 반품도 제3자가 개입할 일은 아니다. 후발 주자는 반품도 불사해야 한다. 반품을 금지시키면 검증된 기존 업체의 기존제품만 매장에 들이려 하기 때문에,신규 기업의 진입은 차단된다. 소비자의 선택폭도 그만큼 줄어든다.

법안에 명시된 입증책임 전가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공정위는 납품업체가 거래단절 등 보복을 두려워해 불공정거래 행위 신고나 증거자료 제출을 꺼리기 때문에,경험적으로 공정거래 저해성이 높은 것으로 증명된 행위 유형들에 대해 입증책임을 유통업체에 지우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입증책임 전가는 '슈퍼 갑'으로서의 공정위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무죄추정 원칙'에 반한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분쟁'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상도의(商道義)와 타협에 의한 갈등조정의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된 분쟁 사례가 '보고되지 않은 판촉 성공사례'를 가려서는 안 된다. 판매촉진 활동의 순기능이 저평가돼서는 안 된다.

대규모 유통업법의 논리적 취약점은 1개의 대형 유통업체와 다수의 납품업체로 조직된 '수요독점시장'을 상정한 것이다. 현실은 복수의 유통업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통업체의 우월적 지위는 과장된 것이다. 유통업체를 옥죄는 과잉규제는 소비자를 향한 대형 유통업체 간의 선의의 경쟁을 위축시키고,종국에는 납품업체의 판로를 위축시킨다. 시장이 커지지 않으면 소규모 납품업체와 중소기업은 절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규제는 '정밀타격식' 간섭이어야 한다. 공정거래를 막는 부당행위는 걸러져야 한다. 하지만 '그물망식' 간섭이어서는 안 된다. '사적 자치와 계약'의 작동원리가 질식되면 시장이 확대될 수 없다. 납품업체를 키우는 것은 규제가 아니라 시장의 확대인 것이다. 유통업체가 움츠리면 납품업체가 설 땅이 없다. 반(反)시장적 과잉규제는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납품업체를 피폐화시킨다. 상생과 동반성장을 규제로 풀 수는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