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위기의식 실종 국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저서 《예전에는 그랬지'(that used to be us)》에서 미국은 쇠퇴하고 있음에도 정작 미국인들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도로나 철도등 국가 인프라는 C등급이고 인재들은 고갈되고 있다. 고용지표와 생산성은 향상되지 않고 교육 경쟁력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 데도 미국인들은 금융위기를 회피하려 하고 다시 빚으로 부동산을 구입한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아예 미국이 2등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쇠퇴주의(declinism)는 일시적인 유행일뿐 이라고 단정한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미국인들의 오만과 현실 부정이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1945년 2차 대전 이후 국가 쇠락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나빠지지 않도록 이성적으로 관리한 영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FT는 주장한다.

국가 성장기에 위기상황은 이득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을 결집시키는 요인도 된다. 하지만 쇠퇴기에 찾아오는 위기나 재난은 엄청난 리스크다.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환상만 좇는 국민들이 많다면 이는 치명적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국가들은 제도적으로 아주 훌륭한 복지 시스템이 세계 경제를 망칠 것이라는 사고를 하지 않았다. 그저 유럽연합(EU)권 내에 안주해 있으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일본 정부도 일본인이 국채를 매입하기 때문에 국가디폴트(채무불이행)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쳐왔다. 하지만 20년 넘도록 장기 불황이 지속되는 이유를 아직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모델로 꼽은 소니가 2000년 이후 세계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기업이 된 것은 기술 최강이라는 자아 도취에 빠져 모바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한때 휴대폰의 세계 최고 기업이었던 모토로라도,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코닥도 성공했다는 도취감에 빠져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갈수록 첨예화되는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성공에 대한 자만심은 하룻밤의 달콤한 꿈이다. 하루 만에 세상이 바뀌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해왔다. 국가나 기업엔 매일매일이 위기인 상황이다. 그리스 복지 시스템이 한국의 환율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일본 대지진이 부품업계의 세계 판도를 바꾸며 태국의 홍수가 세계 자동차 업계의 지형을 하루아침에 변화시키는 그런 시대다.

한국은 제대로 성장하지도 않았으며 국가 융성기를 맞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현존하는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아예 위기에 둔감한 사회가 되고 있다. 오히려 벌써 선진국가가 된 국가처럼 행동하고 소비한다.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느는데도 여행 수지는 신기록을 경신한다. 아직 1인당 국내총생산이 2만달러 수준인데도 명품 고가 핸드백이 가장 잘 팔리는 국가다. 이제 성장은 됐으니 분배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이 득세한다. 오늘 시장 선거를 비롯해 내년에는 총선 대선 등 선거가 줄줄이 이어진다. 선거가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거의 없다. 오히려 국가 위기를 부채질 한다면 곤란하다. 위기를 직시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때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