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삼성미술관 리움
접근은 쉽지 않다. 서울 남산 자락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얏트호텔 쪽에서 내려갈 수도 있고 이태원 쪽에서 올라올 수도 있는데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자면 어디서도 조금은 걸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찾아 둘러보다 보면 적어도 두 번은 놀라게 된다.

먼저 지형에 맞게 지어진 독특한 건물의 조형성에 눈이 휘둥그레지고,다음엔 전시작의 수준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렵다. 기획전은 물론 소장품 위주의 상설전도 마찬가지다.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의 전시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뛰어난 작품들로 구성된다.

지난 13일 개막된 '조선화원대전'(朝鮮畵員大展,2012년 1월29일까지)은 특히 더하다. 만 5년 만에 마련된 고미술전이어서일까. 최고의 소장품이 망라된 건 물론 국내외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빌려온 작품까지 보태져 관람 내내 "어쩌면"이란 감탄사를 넘어 숨을 가다듬게 만든다.

왕실회화와 일반회화로 나눠진 전시엔 정조의 사도세자 묘소 참배길을 다룬 '화성능행도 8곡병'과'영조병술진연도 8곡병',19세기 후반 고종의 행차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가반차도','일월오악도 8곡병','금계도 8곡병'(김홍도 傳)과'적벽도'(안견 傳) 등 하나만으로도 감상하기 충분한 대작들이 대거 포함됐다.

곳곳에 고해상 모니터를 설치,맨눈으로 보기 힘든 작품의 세부 내용을 확대해 살필 수 있도록 꾸미고 청소년 감상용 워크북을 따로 발간하는 등 관람객과의 소통 및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썼다.

'인간의 조건'을 쓴 앙드레 말로에 따르면 예술이란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인간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자 세상을 바로잡는 기준'이다. 실제 걸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 정신과 영혼의 숭고함을 전한다. 미술관이 한 나라의 문화 척도가 되는 이유다.

훌륭한 미술관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수준 높은 소장품을 마련하자면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데다 전시와 보관,연구와 자료 발간에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러니 세계적으로도 순수 민간미술관은 찾기 힘들다. 리움처럼 전통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대규모 민간 미술관은 더욱 그렇다. 리움은 삼성그룹 창립자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대를 이은 문화재와 미술품 사랑이 있어 가능한 장소다. 참 다행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