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실리콘밸리에 '신사업 안테나'
한국 간판 기업들이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의 심장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속속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전 산업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스마트 · 모바일 기술의 융 · 복합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현대자동차 LG전자 GS KT 등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 사무소를 내거나 벤처투자 회사 설립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거점을 마련해 놓은 삼성전자 SK텔레콤도 사업 확대를 위해 현지 인력채용을 늘리고 있다. 미국의 대형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 캐피털의 거랍 가그 벤처 파트너는 "실리콘 밸리 입성을 통해 모바일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려는 한국 대기업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고 전했다.

◆팰로알토의 코리아 군단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알토시를 관통하는 알마 스트리트 한복판에는 한국 기업 SK 간판을 단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SK텔레콤이 2008년 10월 설립한 SK텔레콤벤처스 미국 본사다.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지역을 연결하는 101번 국도 인근에는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만든 삼성벤처아메리카가 있다.

올초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에 국내 대기업들이 세운 벤처캐피털은 이 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자동차가 팰로알토에 현대벤처스(Hyundai Ventures)를 설립하며 활동을 개시했다. 현대벤처스의 모태는 현대차 미국기술연구소(HATCI).이 연구소는 현지 벤처투자 전문가 영입을 통해 자동차와 IT의 융 · 복합을 지원할 수 있는 기술 기업들을 발굴한다는 복안이다.

LG전자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는 최근 국내외에서 채용한 벤처캐피털리스트 3명을 실리콘밸리에 파견,투자유망 기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겼다. LG는 이들의 시장조사가 구체화되는 대로 벤처캐피털을 설립할 계획이다.

통신사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KT와 LG유플러스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사업모델을 갖고 있는 현지의 모바일 앱 개발사 등을 찾아내기 위해 수시로 임원급 인사들을 파견하고 있다. 특히 KT는 재작년부터 미국 팰로알토 지역의 벤처캐피털인 트랜스링크를 통해 스타트업을 발굴,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GS홈쇼핑도 올초부터 미국 현지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팰로알토를 드나들고 있다. 이 회사의 신사업 발굴 업무를 맡고 있는 박솔잎 상무는 "아직 투자 규모는 정하지 않았지만 투자 대상을 계속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스타트업도 호응

이 같은 움직임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참신한 시도와 기술적 역량을 제때 흡수해야 급변하는 모바일산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삼성과 SK 등 앞서 이 지역에 투자했던 회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다른 기업들을 자극하고 있다. 삼성은 1998년 총 500억원 규모의 신기술투자조합을 결성한 것을 필두로 2006년 상반기까지 총 9개의 펀드와 1개의 삼성문화콘텐츠전문투자조합을 만들었다. 2007년 이후에도 4개의 투자 펀드를 추가로 결성하며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삼성보다 기간은 훨씬 짧지만 단기간에 비교적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투자한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위치기반서비스 업체 데카르타(deCarta) △모바일 메신저 깁(giiv) △검색업체 그레플린(greplin) △게임업체 카밤(KABAM) △소셜게임 회사 록유(Rock You!) 등으로 대부분 현지에서 성공적인 사업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들이다. 록유는 페이스북의 대표적인 소셜게임사 중 하나로 컸고 카밤은 투자한 지 6개월 만에 직원 수가 4배로 늘었다. 그레플린은 차세대 소셜 검색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팰로알토 · 새너제이=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