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은행,유통업체 등 민간기업과 함께 출시한 '그린카드'가 좌초 위기에 몰렸다. 출시 3개월 만에 가입자가 20만명을 넘는 등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부의 예산 지원 부족으로 가입자 수 증가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관련 예산을 놓고 정부 부처 간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비씨카드가 구매결제 시스템 전액 부담

환경부는 지난 7월 말 '일상생활에서 녹색경제를 실천한다'는 목표로 전국 주요 은행 및 유통기업들과 함께 '그린카드'를 도입했다. 이달 중순 기준으로 가입자 수는 20만5000여명에 달한다. 그린카드가 큰 인기를 끌면서 연내 30만명 가입이라는 당초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라고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장담해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가입자 수가 정체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린카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을 놓고 정부 부처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그린카드의 핵심은 소비자들이 유통업체에서 관련제품을 구매했을 때 포인트를 적립시켜 주는 것.이를 위해 유통매장의 기존 결제 시스템을 그린카드 포인트 적립이 가능한 '그린포스(greenPOS)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전국 총 5만여개 유통매장에 해당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선 약 40억원의 비용이 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올해 배정된 재원은 20억원에 불과하다. 이 재원으로는 내년 상반기까지 전국 1만5000여개 매장에만 시스템 설치가 가능하다. 이 비용은 비씨카드 부담이다. 정부가 앞서 그린카드 주관사로 비씨카드를 선정하는 대신 관련 비용을 부담토록 했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 배정은 '0원'

비씨카드 관계자는 "올초 그린카드 주관사로 선정될 때 시스템 설치 비용 20억원을 부담하는 대신 추가 비용이 소요되면 국고로 충당키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그린포스 시스템 설치 비용이 한 푼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환경부 기후변화협력과 관계자는 "예산을 배정받으려고 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반대하면서 포함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반면 재정부 고용환경예산과 관계자는 "그린카드 사업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라며 "해당 사업이 아무리 중요한 정책이라 해도 정부가 재원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기업들이 (시스템 개선을) 하면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정부에서 요청이 오더라도 추가 비용을 부담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씨카드가 비용 부담을 거부하는 와중에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 전국 유통매장의 3분의 2가 넘는 3만5000여곳에 그린포스 시스템 설치가 불가능해진다. 그린카드를 써도 이들 매장에서는 포인트 적립이 불가능하고 혜택도 없다는 얘기다. 그린카드 운영기관인 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정부가 그린카드 실적에 열을 올리면서도 추가비용을 서로 미루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 그린카드

소비자들이 친환경 녹색제품을 특정 카드로 구매하거나 대중교통을 활용하면 일정량의 포인트를 적립해 쓰게 해주는 제도.연간 최대 20만원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환경부가 비씨카드 등과 함께 지난 7월 말 도입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