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전기(傳記)가 나왔다고 온 언론이 난리법석인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그저 신간 소개 정도면 충분할 것을 너도나도 과잉 홍보로 지면을 도배질하다시피 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양서들은 지면의 한 귀퉁이도 얻지 못한 채 잊혀져 간다. 잡스 사망 이후 일련의 보도에서 한국 언론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대중의 영웅을 만들어 내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사회 전체가 즉물적인 충동 사회로 치닫는 현상을 앞장서 조장하는 것도 언론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언론은 순응하든지,적극적으로 정권에 부역한 부끄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독재가 사라진 지금의 언론은 대중인기에 자발적으로 부역하는 판이다. 관음증을 부추기고, 팩트를 잘라내고, 사소한 사실을 침소봉대해 말초적 감각을 자극한다. 주류 언론까지 여배우 노출에 열광하고, 서태지 이지아의 이혼에 1,3면까지 배정할 정도다. 막장 드라마와 잡담으로 일관하는 방송,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인터넷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언론은 깊은 사색과 합리적 숙고를 통해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검증을 거치고 숙려가 보태지면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지만 점차 이를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ㅋㅋ''ㅎㅎ'로 종결되는 SNS 등의 단편적인 정서를 여론으로 포장하고, 감정 편향을 소통으로 착각하는 것도 역시 언론이다. 경제 보도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과장 편향 보도는 기업을 적대시하고 반시장적 정서를 생산해낸다. 사실과 가치를 혼동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덧칠해 과학적 인식을 방해한다.

성숙한 사회라면 가치들 간에 질서가 부여되고 그것에 대한 질서정연한 숙고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그런 질서의 체계를 찾기 어려워졌다. 새로운 미디어들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말초적 단어들로 채워진다. 언제나 그런 현상이 존재했었지만 문제는 그런 저차원의 여론이 점차 중심부를 지배하게 됐다는 점이다. 논리 아닌 고함이, 진지한 대화 아닌 즉물적 소통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론의 자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