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ㆍ브람스에 장승업 藝魂 녹여낼게요"
"리움미술관 '화원' 전시회 보셨어요? 오원 장승업과 단원 김홍도 같은 대표적 화가들의 작품이 다 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태블릿 PC로 확대해서 봤더니 붓 터치의 섬세함까지 생생하게 다 보여요. 자연에 대한 관찰력이 엄청나더라고요. 힘 있는 붓놀림 때문에 모든 게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음악이 무대에서 관객과 연주자의 교감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처럼 화가들의 그림 역시 관람객들에 의해 완성되나 봅니다. "

조선말기 천재화가 장승업의 그림에 큰 감동을 받고 왔다는 첼리스트 양성원 연세대 음대 교수(44).전날 밤 연주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 없이 상기된 표정의 그를 연세대 음대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파리음악원 출신의 20년지기 친구들인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슈트로세와 트리오를 결성했다.

트리오의 이름은 장승업의 호(號)를 딴 '트리오 오원'이다.

그는 "화가 장승업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헌신,자기 예술에 대한 믿음과 집념이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트리오 세 명의 이름을 조합하면 '오원'이라는 발음이 나기도 한다"며 이름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내달 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트리오 오원' 첫 공식 연주회를 갖는다.

"트리오 오원의 첫 작품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삼총사인 슈만,멘델스존,브람스의 트리오 곡입니다. 이들이 작곡하던 시기는 장승업이 활동하던 때와 정확히 일치해요. 세상은 참 멀면서도 가깝죠.지구 반대편 사람들인데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작품의 완성도는 비슷하니까요. "

'지적인 연주자'로 불리는 그는 스스로의 성격에 대해 "30초도 가만히 못 앉아 있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주위가 산만했는데 여덟 살 때 나간 첫 첼로 콩쿠르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지금도 산만함을 누르기 위해 노력하는데 오히려 그런 엉뚱한 성격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 같아요. 청각을 주로 쓰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취미는 다른 감각기관의 균형을 맞추는 데 씁니다. "

최근에는 작은 일탈을 감행했다. 파격적이고 유머 넘치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클라리넷 앙상블 '레봉벡(Les Bons Becs)'과 첫 크로스오버 음반을 낸 것.정통 클래식 연주자인 그에게 탱고 재즈 가곡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이 앨범은 '음악적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두 음역대의 악기로 익숙한 곡들을 조화시킨 이번 앨범은 잘 블렌딩된 와인처럼 편안하다. 이들은 12월 전국 투어 공연도 갖는다.

"그동안 소품 제의는 많았는데 정통 클래식에만 집중해왔어요. 재미있는 일탈이었고,조금 다른 모습을 좋은 시기에 잘 보여준 것 같아요. "

1년간의 안식년으로 영국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연주와 녹음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휴식을 주는 건 맛집 찾기.그는 "무엇이든 먹을 때 옛 추억이 생각나거나 함께 먹고 싶은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미식가인데 그런 면에서 전 미식가"라고 말했다.

"시골에서 투박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좋아요.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어디든 찾아갑니다. 얼마 전엔 광주에 갔다가 고기전 몇 점과 젓갈 반찬을 놓고 냉녹차에 밥을 말아먹으며 30~40년 전 할머니댁에서 먹던 그 맛과 추억에 젖었죠.그 시절이 그리워졌으니 이 정도면 진짜 미식가인가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