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新성장도 칸막이 치나
국가의 미래투자마저 제로섬 게임이 되고 있다. 저마다 내 몫을 달라는 이해관계자들이 늘어나고,정부는 미래투자의 경제적 효과보다 득표효과를 더 따지는 분위기다. 정치적 계산이 앞서면 진짜 미래투자는 줄어들게 되고,결국 새로운 성장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신성장동력을 또 내놨다.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에는 '생태계 발전형 10대 신성장동력 프로젝트'로 명명됐다. 청와대는 지난 8 · 15 대통령 경축사에서 말한 공생(共生)발전의 액션플랜이라고 한다. 2년 전 정부가 발표한 녹색기술,첨단융합,고부가서비스 등 3대 분야 17개 신성장동력과 별도로 중소기업 주도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있다면 청와대는 중기 적합 신성장동력을 들고 나온 셈이다.

산업계와 과학기술계는 뜬금없다는 표정이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서 밝히기 전까지는 언론도 이 프로젝트를 몰랐다. 청와대가 비공개위원회를 만들어 작업해왔다는 사실도 그때 흘러나왔다. 2009년 정부가 신성장동력을 선정할 때 공청회 등 공개 검증을 거쳤던 것과는 딴판이다. 무슨 말 못할 사유라도 있었다는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프로젝트 내용은 더 의문투성이다. 10대 프로젝트는 2차전지,박막태양전지,전력반도체,스마트 LCD시스템 조명,해상풍력,물산업,스마트 콘텐츠,차세대 SW플랫폼,의료시스템,줄기세포 등이다. 이 프로젝트들은 왜 중소기업이 주도하지 않으면 안되는지,그 근거는 무엇인지 모든 게 논란거리다. 누가 신성장동력을 대기업 주도,중소기업 주도로 딱 구분지을 수 있다는 것인지도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산업화가 될지,어떤 산업구조로 나타날지 시장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게 바로 신성장일 텐데 이 나라 공무원들은 미래를 훤히 내다본다는 얘기 아닌가.

생태계 발전형이라는 것도 그렇다. 대기업 주도는 생태계 퇴보형이고,중소기업 주도는 생태계 발전형이라고 보는 그 이분법이 놀랍다. 우리가 신성장동력을 통째로 독점할 수 있다면 국내 생태계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지금의 글로벌 경쟁환경이다. 정부가 제시한 신성장동력은 중국,일본,유럽,미국도 다 아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끼리 대기업 주도 생태계냐,중소기업 주도 생태계냐를 놓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국내 생태계가 아니라 글로벌 생태계다. 특화와 차별화를 통해 어떻게 글로벌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지 그게 핵심인 것이다.

결국 신성장동력을 공생발전의 액션플랜에 억지로 끌어들이면서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공생을 보장하는 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성장동력은 더욱 그렇다. 대기업이건,중소기업이건 새로운 도전자들을 이기지 못하는 기존 기업은 망하는 것이고,또 그래야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업의 흥망은 자연스러운 것이고,그게 산업의 혁신이다. 정부가 신성장동력을 대기업,중소기업으로 갈라 칸막이를 치는 것은 그런 혁신 자체를 가로막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