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정치 빅뱅' 후폭풍 촉각…재계, 새 경영환경 '깊은 고민'
"기업 경영 전반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재계도 고민에 빠졌다. 시민운동가 출신이 기존 정당체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기업에도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고위인사는 27일 "대기업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온 박 후보의 당선은 대기업 경영풍토에 대한 국민들의 직 · 간접적인 비판이 녹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권력게임'으로 전락해버린 기존의 낡은 정치체제가 더 이상 설 땅을 잃어버린 것처럼 소비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기업들은 언제든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분노'에 익숙하고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20~30대 젊은 신(新) 소비계층의 등장은 경영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윤리 · 사회적 책임경영 강화될 듯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환경이 수익 중심의 경영에서 20~30년 앞을 내다보는 기업수명 중심의 경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장수(長壽)기업이 되려면 경영자의 윤리의식과 고객에게 명확하고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윤리경영과 기업 이미지는 위기가 닥칠 때 기업의 존망을 결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79년 2차 석유파동 여파로 미국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가 파산 직전에 몰리자 시민들은 "크라이슬러가 망하면 미국 자동차산업이 망하고 미국 경제가 거덜날 것"이라며 의원들을 상대로 구명운동에 나섰다.

미 의회는 정부를 압박했고,은행이 12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는데 정부가 이례적으로 보증을 서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2000년 미국에서 매출 6위였던 엔론사는 회계분식이 적발된 후 순식간에 공중분해됐다. 7만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영자의 윤리의식 결여가 국민적인 공분을 사며 파산으로 내몰렸다.

이두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객들에게 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경영(CSR)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대기업 오너들이 수천억원의 사재를 기부하고 SK그룹 등이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SNS 기업에 독이 될 수도

선거에서 트위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위력을 발휘한 대목은 기업의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에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것이란 점을 예고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마케팅의 권위자인 존 다이튼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SNS를 사용하는 고객들,즉 외부 마케터(marketer)를 잘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셜미디어의 광범위성과 빠른 속도를 감안할 때 한번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기때문이다. 소셜미디어가 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은 국내외 소셜미디어를 전담하는 인력만 4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기업들은 그동안 특정 메시지를 정해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해왔지만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며 "내부 투명성을 높이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