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신 못차리는 한나라당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의 분위기는 세간의 예상과는 달랐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10 · 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완패를 수습하기 위한 '책임'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날 저녁만 해도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지도체제에 대한 대수술이 예상됐었다. 당 지도부 내에서조차 "당권에 연연해선 안 된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등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 최고위원은 "수도권에서 50석이 날아갈지 모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밤새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지도부 책임론은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홍 대표는 "쇄신을 통해 공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디지털 노마드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만 밝혔다. 선거 결과에 대해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이 박원순 당선자에게 앞선 곳은 강남 3구와 용산 등 4개구에 불과하다. 나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중구에서조차 밀렸다.

당내에선 "수도권 민심은 이미 등을 돌렸는데 지도부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반 의원들의 위기감은 커가고 있다. 수도권 전반에 걸쳐 한나라당 현역의원의 교체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팽배하다.

전여옥 의원은 "한나라당은 지지자들을 배신한 정당"이라며 "한나라당이란 정당의 존재 여부에 대해 경악할 만한 답이 유권자에게서 나왔다"고 꼬집었다. 한 중진 의원은 "서울 전멸의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다. 정두언 의원은 홍 대표가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한 데 대해 "셧 더 마우스'(Shut the mouth)"라며 "아내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자는 말이 새삼 절실한 시점"이라고 비판했다.

선거에서 졌다고 지도부를 무조건 갈아치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지지세마저 지켜내지 못한 선거패배에 대해 지도부 가운데 그 누구도 정치적 책임을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은 당 밑바닥 정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정당 정치의 실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위기 상황에서 지도부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