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최고 PB 꿈꾸는 美女 프로골퍼
"고객 자산관리도 해주고 골프도 지도하는 최고의 프라이빗 뱅커(PB)가 되고 싶어요. "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소속 구윤희 프로(29 · 사진)는 지난해 10월 우리투자증권 입사 후 임원들과의 인사 자리에서 이처럼 당차게 말했다. 구 프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골프밖에 모르고 살았던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니 깜짝 놀라는 임원들도 있었다"며 "사실 그땐 PB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1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해 하반기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각각 2명과 3명의 프로골퍼를 정식 직원으로 영입해 증권업계에 화제가 됐다. 이 중 정규 프로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사람은 구 프로가 유일하다. 구 프로는 2005년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투어 프로미스레이디스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다.

구 프로의 역할은 부자 고객들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이다. 구 프로와 함께 우리투자증권에 입사한 골퍼들은 모두 총무부에 소속(직급은 대리)돼 일선 지점의 요청이 있을 경우 VIP고객들에게 골프를 지도한다. 이들이 처음 증권사에 입사했던 무렵만 하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구 프로 스스로 "입사 초기에는 과장 차장 부장 등 사내 직급 순서도 잘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구 프로 희망대로 PB가 된다면 자기 센터로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센터장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구 프로가 증권사 직원으로 변신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한식당을 운영하며 딸을 뒷바라지했던 구 프로의 아버지는 20년 넘게 주식 투자를 해 증권업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2008년 프로투어 출전을 그만두기로 했을 때 골퍼로 성공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가 많이 아쉬워했죠.그런데 지난해 '증권사에 입사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씀드렸더니,고개를 끄덕이며 '증권사에 입사하면 PB를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해주시더군요. "

구 프로는 우리투자증권에서 PB가 되려면 반드시 따야 하는 투자상담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이다. 증권사 입사 후 주식 투자도 시작했다.

"수백 페이지짜리 수험서 4~5권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빠른 시간 내에 PB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할 겁니다. 주식 투자는 3000만원을 종잣돈으로 시험 삼아 시작해봤는데,한때 수익률이 원금 대비 40% 수준까지 갔어요. 최근에는 변동성이 커져 수익률이 많이 줄었지만,그래도 여전히 '플러스' 상태랍니다. "

구 프로는 "증권사에 입사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꼭 성공해 프로골퍼 후배들이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