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정상들이 그리스 부채의 절반을 탕감해주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이로써 그리스는 은행 등 민간 부문 채권자들에 대해 1000억유로를 갚지 않아도 된다. 그리스는 일단 디폴트(채무불이행)의 덫에서 벗어났으며 유럽 금융위기도 안정을 찾아가는 형국이다.

유럽 정상들이 그리스에 이런 혜택을 준 것은 그리스 상황이 유럽 전체위기로 비화될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지난 7월 그리스에 국채 만기를 연장하고 금리도 깎아줬지만 그동안 채무 탕감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디폴트가 나려는 판에 은행들이 그나마 채무의 절반이라도 챙기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채무 탕감에 극력 반대하던 라가르드 IMF 총재가 이번 회의에선 아무 소리 않고 동의한 것도 마찬가지다.

디폴트가 우려되는 국가들에 대한 채무 탕감은 국제사회에서 오래된 관행이 돼왔다. 1980년대 베네수엘라 칠레 등 남미 위기 때에는 미국이 아예 국민들의 가계 부채까지 탕감해주었다. 채권국가들의 모임인 파리클럽과 민간채권단인 런던클럽이 러시아의 국가 부채를 탕감해준 사례도 유명하다. 2000년대 들어와서도 파키스탄 세르비아 이라크 등 부채 탕감을 받은 국가들은 부지기수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파리클럽과 채무 탕감 규모를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IMF 외환위기 때 채무를 전혀 탕감받지 못했던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불공평했다. 혜택은커녕 5개 대형 은행들이 퇴출됐을 정도였다. 당시 외채 협상을 했던 사람들은 협상이 성공적이었다고 아직도 자랑한다. 그들은 그리스에 대한 채무 탕감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