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시대 이전에도 '포샵'은 있었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서 재미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공간 왜곡'이란 제목의 사진이었는 데 한 의류 쇼핑몰에서 광고에 쓰려고 찍은 모델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었다. 문제는 어설픈 후보정이었다. 팔과 다리를 가늘고 길게 만드는 과정에서 뒷배경까지 건드리는 바람에 바닥의 보도블록이 곡선으로 휘고 벽이 움푹 들어가는 등 현실적으로는 생길 수 없는 분위기의 사진이 돼버린 것이다.

대표적인 사진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의 이름을 따 보통 '포샵'이란 단어로 통용되는 이런 류의 후보정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포토샵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도 급증했다. 요즘은 굳이 포토샵을 이용하지 않아도 간단하게 사진을 조작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클릭 한 번으로 피부의 잡티 정도는 없애버릴 수 있는 시대다.

◆필름 갖고도 '포샵' 가능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에도 '포샵'은 존재했다. 암실 자체가 거대한 포토샵이었다. 현상한 필름을 갖고 인화를 하면서 사진의 밝기나 대비 등을 간단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닷징,버닝 등의 기법으로 사진 일부를 밝게 하거나 어둡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진의 일부분을 잘라내거나 수평이 맞지 않는 사진을 약간씩 회전시키는 일 등도 할 수 있다.

얼굴 잡티를 없앤다거나 턱을 갸름하게 하는 등의 작업도 물론 가능했다. 과거 증명사진을 꽤나 잘 찍는다고 소문난 집들의 대다수는 물론 이 같은 보정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작업의 경우 대부분 필름을 직접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잡티가 있는 부분은 얼굴색과 최대한 비슷한 색의 펜으로 덧칠해 없애고 머리카락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스타일을 바꿀 수도,풍성하게 혹은 적게도 할 수 있다. 턱 아랫 부분에 펜으로 명암을 넣어 턱선을 날카롭게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사진 합성도 흔한 일이었다. 필름을 오려 붙이는 원시적인 방법부터 사진을 인화해 조작한 뒤 다시 사진을 찍어 필름으로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19세기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팸플릿에 쓸 북군 장교들의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당시 가장 큰 공을 세우던 사람이 불참해 나중에 따로 찍어 합성해 넣었던 일화가 있을 정도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정적을 숙청하고 나면 과거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에서 삭제해 버리는 일이 잦았다.

◆"진실을 찍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찍지 않는 것이다"

사진이란 매체의 가장 큰 특성으로 '재현성'을 꼽는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특성 덕에 사진은 역사적인 등장과 함께 회화의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그것이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사진 조작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사진이 거짓을 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합의(?) 하에서 작게는 입사 서류에 붙이는 증명사진부터 크게는 독재자의 선전용 조작 사진까지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소수만이 이 같은 사진 조작을 할 수 있었던 탓에 사진은 사실이라는 명제가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졌지만 '포샵'이 일반화된 지금에 와선 사진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유행처럼 퍼졌던 '합성이네'라는 댓글 역시 여기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사진가 듀안 마이클은 "진실을 찍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찍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사진이 되레 아무런 진실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아직도 사진이 진실이 아니란 점을 믿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당신의 입사 원서에 붙어있거나 혹은 최근에 새로 찍은 증명 사진을 한번 들여다보라.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