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렴한 R&D문화' 확산을
'1%의 부패와 탐욕을 향한 99%의 분노.' 반(反)월가 시위의 슬로건이다. 최근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를 시작으로 국민의 분노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타락한 금융 자본주의,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구조, 그리고 정경유착 등에 대한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타락을 보여준 미국 금융자본의 탐욕과 사회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지금 1%의 부패에 대한 비판으로 향하고 있다. 이것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라의 경제발전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면 부정부패 정도가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경제발전 속도가 특히 빨랐던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CPI · Corruption Perception Index)는 10점 만점에 5.4점으로 2010년 178개국 중 39위를 차지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자료에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97점이나 선진국 기준인 7점대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더구나 한 해 전에 180개국 중 5.5점을 얻어 39위였던 것에 비하면 정부의 비리척결 의지와 청렴문화 확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답보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지금 전 지구적으로 불어닥친 기후 · 에너지 시대를 맞아 연구 · 개발(R&D) 분야에 대한 그린 레이스 경쟁 환경 아래에 처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에너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확대와 함께 R&D 제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 투자 규모에서는 세계 4~5위 수준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요즘 이따금 들려오는 국가 연구비 횡령 소식들은 정부의 차세대 먹거리 산업 창출을 위한 대규모 투자 노력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연구비를 보다 투명하게 집행하기 위해 '실시간 통합연구비 관리시스템(RCMS · Real-time Cash Management System)' 제도 등을 도입, 연구비 사용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인 장치나 감시보다 투명한 연구비 집행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청렴한 R&D를 '문화'로서 정착시키는 노력일 것이다. 한 명의 도둑을 열 명의 경찰이 지키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국가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아무리 많은 대책을 내놔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일 게다. 선진적이고 청렴한 R&D 문화는 연구비의 양적인 팽창에 만족하지 않고,질적인 성숙을 추구하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매너리즘을 경계하는 것이다. 글로벌 환경 하에서 부패행위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부패행위를 방임하는 등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는 모습이 계속된다면 결국 자멸의 길로 들어설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청렴한 R&D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가적 노력과 관련 전문가들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준현 <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