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가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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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 높은 곳에 올라 단풍 구경을 하며 시와 술을 함께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등고(登高),또는 유산(遊山)이라 했다. 일종의 단체 단풍놀이다.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던 실학자 이규경은 홀로 단풍을 즐겼던 모양이다. '백접리 쓰고 은사삼(隱士衫) 입고 단풍잎 지는 것을 바라보다 문득 시구 하나를 얻어 단풍잎 위에 쓴다. ' 은사삼은 도가의 은자(隱者) 성방(成芳)이 입었다는 적삼이다. 그런 차림으로 단풍잎 위에 시를 썼다니 대단한 로맨티스트다.
예나 지금이나 단풍은 현란한 색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나무로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겨울에 잎을 달고 있는 건 소득 없이 식량을 축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분 통로를 막아 잎을 떨궈 버린다. 유지비용을 줄여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려는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도종환 '단풍 드는 날')
단풍은 보통 9월 말께 설악산 정상에서 시작돼 오대산 치악산을 거쳐 소백산 월악산 등으로 번져간다. 그리고 11월 내장산 주왕산 월출산까지 남하하면서 사라진다. 산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는 하루 40m 정도씩,북에서 남으로 25㎞씩 이동한다. 이게 가을의 속도다.
꼭 산에서만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의 삼청동길,덕수궁길,강남 가로수길,성동 송정둑길 등 '아름다운 단풍길' 80곳은 내달 중순까지 낙엽을 쓸지 않는다. 서울동물원이 만든 폭 5m,길이 30m의 단풍풀장은 아이들이 마음껏 뒹굴기에 좋고,서울대공원의 900m 단풍길은 호젓하게 산책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단풍이 한창일 때면 문득 세월의 흐름을 느끼면서 괜히 가슴이 철렁한다는 이들도 있다. 경기침체 조짐에 실업난,계속되는 정치혼란까지 올해는 유독 마음 둘 곳이 마땅찮다. 이런 때일수록 근심 걱정 멀찍이 밀어놓고 가을 이야기나 만들어 볼 일이다. '가을이/거기에 있었습니다. /숲길을 지나/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한/사랑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마음껏 탄성을 질러도 좋을/우리를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설렘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용혜원 '가을 이야기').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예나 지금이나 단풍은 현란한 색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나무로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겨울에 잎을 달고 있는 건 소득 없이 식량을 축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분 통로를 막아 잎을 떨궈 버린다. 유지비용을 줄여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려는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도종환 '단풍 드는 날')
단풍은 보통 9월 말께 설악산 정상에서 시작돼 오대산 치악산을 거쳐 소백산 월악산 등으로 번져간다. 그리고 11월 내장산 주왕산 월출산까지 남하하면서 사라진다. 산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는 하루 40m 정도씩,북에서 남으로 25㎞씩 이동한다. 이게 가을의 속도다.
꼭 산에서만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의 삼청동길,덕수궁길,강남 가로수길,성동 송정둑길 등 '아름다운 단풍길' 80곳은 내달 중순까지 낙엽을 쓸지 않는다. 서울동물원이 만든 폭 5m,길이 30m의 단풍풀장은 아이들이 마음껏 뒹굴기에 좋고,서울대공원의 900m 단풍길은 호젓하게 산책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단풍이 한창일 때면 문득 세월의 흐름을 느끼면서 괜히 가슴이 철렁한다는 이들도 있다. 경기침체 조짐에 실업난,계속되는 정치혼란까지 올해는 유독 마음 둘 곳이 마땅찮다. 이런 때일수록 근심 걱정 멀찍이 밀어놓고 가을 이야기나 만들어 볼 일이다. '가을이/거기에 있었습니다. /숲길을 지나/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한/사랑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마음껏 탄성을 질러도 좋을/우리를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설렘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용혜원 '가을 이야기').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