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자연을 배우세요"
"저는 항상 벌 받는 사람처럼 때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당나귀였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그랬어요.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장난꾸러기 아이가 놀고 싶어 합니다. "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 갤러리에서 내달 1일부터 23일까지 개인전을 펼치는 재독 화가 노은님 씨(65 · 사진).그는 "전쟁터의 군인처럼 죽기살기로 싸울 필요는 없다"며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는 풀밭 위의 아이들처럼,쫑쫑거리는 참새처럼 뛰어놀아야 한다"고 말했다.

1970년 간호보조원을 모집하는 신문광고를 보고 독일로 떠나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면서 병원 일을 했던 노씨는 독감으로 결근한 자신을 찾아온 간호장이 집에 쌓여 있는 그림들을 보게 되는 우연과 또 다른 인연들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69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초상화를 그린 것이 내 화업의 시작입니다. 스물다섯 살 되던 해 간호보조원으로 독일 함부르크로 건너가 병원에서 일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렸어요. 1972년 겨울 어느날 독감으로 결근했을 때 병문안 왔던 간호장이 방에 가득 쌓인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더군요. 그가 병원 한 켠을 전시장으로 꾸며 '여가를 위한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어줬는데 이것이 한스 티만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 교수의 눈에 띄었고,이듬해 그 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됐어요. "

그는 1986년 백남준,요제프 보이스 등 세기의 거장들과 함께 '평화를 위한 전시회'에 참가했다. 그때 백남준이 "독일에 노은님이라고 그림 잘 그리는 한국 여자가 있다"는 소문을 낸 후로 국제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 화단에서 명성을 얻은 그는 최근 함부르크와 미헬슈타트에서 작업하며 다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가장 행복한 날은 오늘'이라는 이번 전시에는 2009년 이후 역시 천진난만한 붓질과 강렬한 원색의 색채로 꽃 물고기 정원 등을 그린 근작 50여점을 내보인다.

노씨는 대학시절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하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가장 행복한 날은 오늘'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자연을 변형시키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물고기 나비 사람 하늘 새 등 자연의 모든 대상을 단순하게 그려낸다. 작품에는 밝은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고,천진하고 소박한 느낌도 준다. 유럽 화단에서 그의 이름 앞에 '동양의 명상과 독일의 표현주의가 만나는 다리' '그림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아이처럼 자연을 배우고 들여다 보면 '행복'이란 꽃이 활짝 핀다"며 "철 따라 나오는 자연의 색깔들은 아마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주는 아침 이슬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전시에 맞춰 독일 디자이너 카스텐 베스트와 수잔네 슈바르츠가 한솔제지와 비핸즈의 협찬을 받아 한글 독어 영어로 제작한 화집도 출간한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