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다 정교한 극사실화…중견 4인방 한자리에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리는 극사실주의 화가 4인방이 40년 만에 뭉쳤다.

벽돌 그림으로 유명한 김강용,사유의 공간을 묘사하는 이석주,자연의 안과 밖 이미지를 화면에 옮기는 주태석,의자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지석철 씨 등 4명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갤러리와 용산 비컨갤러리의 가을 기획전 '가을의 전설'전에 근작 50여점을 걸었다.

김강용 이석주 지석철 씨는 홍익대 미대 71학번 동기생이며 주태석 씨는 74학번으로 3년 후배다.

단색조의 추상과 미니멀리즘 같은 개념 미술이 유행하던 1970년대 후반에 극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한 작가들이다.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 세대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이들은 미국과는 다른 우리 특유의 정서를 살려내며 '한국 극사실주의 1세대' 화가로 분류된다.

극사실적인 벽돌 그림으로 유명한 김씨는 캔버스에 접착제를 섞은 모래를 붙인 뒤 그 위에 적색 청색 녹색 분홍색 등 다양한 색의 천연 모래로 벽돌 형상을 그린 신작 여러 점을 들고 나왔다. 화면에 쌓여 있거나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벽돌들은 낱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주씨는 식상한 자연의 이미지를 흉내낸다는 주변의 이야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업 30여년간 빛과 그림자에 천착한 '자연-이미지' 시리즈 작업을 해왔다. 자연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잃어버린 자연의 본성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빛과 그림자의 공존'을 바탕으로 자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 1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이씨는 그동안 시계 이미지로 시간을 표현해온 데서 벗어나 낡고 오래된 책의 이미지를 그린 신작을 들고 나왔다. 책을 통해 현실과 초현실 세계가 공존하는 시간을 잡아낸 작품이다.

그는 "시간은 현대인들에게 피할 수 없는 구속을 의미하지만 기억의 앙금들을 건져올려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켜준다"며 "책은 기억의 저편을 향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재"라고 말했다.

지씨의 트레이드 마크는 '미니 의자'다. 그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미니 의자가 등장한다. 미니 의자는 고물 자동차,버려진 돌,가난했던 시절 교실을 지키던 난로,시들어버린 낙엽과 함께 떠나버리고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심정택 비컨갤러리 대표는 "한국 극사실 작업의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조망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4일까지 이어진다. (02)567-165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