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의 ‘글로벌 등용문’으로 떠오른 이곳에 한국인 최초로 진출한 사람이 있다. 오는 5일까지 이곳에서 개인 전시를 진행 중인 디자이너 노일훈 씨(34 · 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노씨가 전시한 ‘라디올라리아(Radiolaria)’ 테이블 시리즈는 벌집처럼 불규칙한 구멍이 숭숭 뚫린 뼈대와 날렵한 곡선이 조화를 이룬다.
노씨는 “섬유를 일일이 잡아당겨 그물 모양의 틀을 만든 후 그 위에 탄소섬유를 입혀 만든 작품들”이라며 “당길 때마다 매번 다른 모양을 얻어낼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100% 수작업을 고수하기 때문에 테이블 하나를 만드는 데 최소 두세 달이 걸린다. 지난해 막 활동을 시작한 신예지만,이처럼 독특한 제작 방식과 장인 정신 덕에 영국 내에서도 빠르게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노씨는 “런던에서 라디올라리아 시리즈가 2000만~3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며 “대량 생산품의 획일적 디자인에 염증을 느낀 유럽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왔던 것은 아니다.건축가를 꿈꾸던 그는 영국에서 중 ·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후 1990년대 AA건축학교를 거쳐 유명 건축 회사인 노먼포스터에 입사했다. 하지만 가구 조명등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에 더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회사를 그만뒀다.대영박물관,중국베이징 공항 등 세계 유명 건축물들을 디자인한 이 회사는 건축가들 사이에선 ‘꿈의 회사’로 명망이 높은 곳이다.하지만 일을 하면 할 수록 건축 보다는 가구 조명 등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에 더 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예술왕립학교(RCA)에 입학해 디자인을 바닥부터 배우기 시작했다”며 “기하학적인 디자인과 견고한 구조를 만족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건 이런 배경 덕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시를 시작한 후 노씨는 매일 밀려드는 문의에 즐거운 비명이다.런던에서 전시 경험을 더 쌓은 후 다른 유럽 국가로도 차차 진출한다는 계획이다.노씨는 “스페인의 ‘가우디’처럼 ‘노일훈 스타일’을 세계에 각인시키며 한국의 미를 알리는 디자이너가 될 것”이라며 “한국 작가들과 협업할 기회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런던=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