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사회공헌비 우리가 다 내냐" 불만
"성과급 많이 주는 증권사들은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행만 봉인가요?"(A은행 임원)

최근 은행연합회 등 5대 금융협회 수장들이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강화방안'을 발표한 후 상당수 은행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각 협회의 내년 사회공헌 예산에서 은행 비중이 8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내년 금융권이 부담하기로 한 사회공헌 예산액 1조3163억원 가운데 은행 부담액은 1조200억원.전체의 77.5%에 달한다.

반면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들은 3.8%인 498억원만 부담하기로 했다. 은행 전체 사회공헌액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생명보험사들은 1332억원(10.1%),손해보험사들은 612억원(4.6%),카드사들은 521억원(4.0%)을 각각 내년 사회공헌 비용으로 지출할 계획이다.

은행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투자회사 등이 협회장 공동 발표문을 내는 과정에서 개별 사회공헌 예산액을 비공개에 부칠 것을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증권사나 보험사 등은 급여 수준이 은행보다 높고 순익도 적지 않게 내는데 형평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올해 순익 및 총자산을 비교해도 비은행권의 사회공헌 예산 비중이 지나치게 적다는 게 은행들의 주장이다. 업계에선 올해 은행권이 15조~16조원,비은행 금융권이 13조~14조원의 연간 순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총자산 역시 은행권이 1916조원(전체의 64.2%)인 데 비해 △생보사 425조원 △증권사 248조원 △손보사 113조원 △카드사 76조원 등이다. 생보사만 해도 '덩치' 면에서 은행의 20~30%는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는 "국내 금융산업 구조가 은행 중심이란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의 고객은 국민 전체에 가까워 은행이 다른 업권보다 사회공헌 예산을 많이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잉 경쟁으로 주식거래 수수료가 이미 0.015%까지 떨어진 상황이어서 은행권 수수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황건호 금투협회장은 "금융투자회사 중엔 세계적인 기업이 아직 없고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익이 적다"며 "금융투자회사의 기본적인 (영업) 기능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해명했다.

이우철 생보협회장 역시 "생보사 자산을 다 합쳐도 시중은행 한 곳 정도에 불과한 게 현실"이라며 "내년에 사회공헌 예산을 올해보다 50% 늘리는 부분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과 달리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는 반(反) 금융 시위는 은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공적 성격을 갖고 있는 금융권이 전체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5대 금융협회는 지난 27일 간담회를 열어 사회공헌 예산액을 내년에 50% 증액하는 한편 각 사별로 사회공헌담당 임원을 별도 선임하기로 했다. 각 협회 소속 회원사들은 올해 이익분에 대해서도 과도한 배당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조재길/서정환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