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요우커(遊客)와 러브호텔
[한경포럼] 요우커(遊客)와 러브호텔
중국 유통업체 바오젠의 직원 1만1000여 명이 지난 9월 한국 관광을 왔다. 이들이 머무는 동안 제주도 호텔 객실 점유율은 90%가 넘었다. 서울 롯데면세점을 찾았을 땐 하루 매출이 45억9200만원으로 치솟았다. 개점 이래 최고 기록이다. 방한 중 이들이 쓴 돈만 400억원에 달했다. 당초 바오젠은 1만5000명을 한국에 보낼 계획이었으나 방이 모자라 4000명을 줄였다고 한다.

요우커(遊客)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은 이처럼 규모부터 다르다. 한 해 해외로 나가는 인원이 우리 인구보다 많은 5400만명에 달한다. 게다가 매년 500여만명씩 늘어난다. 2020년에는 1억명을 넘는다는 계산이다. 한국 관광 수요도 늘고 있다. 2005년 71만명에 불과했으나 작년 187만명,올해는 220만명으로 예상된다. 연 20%에 가까운 성장세다.

이들이 한국 관광에서 쓰는 돈은 상당하다. 중국 최대 신용카드인 인롄(銀聯)카드 사용액만 9월 말까지 6623억원이다. 연말까지는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한국에서 인롄카드로 결제한 금액 8300억원보다 더 많다. 씀씀이가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여기에 비자,마스터 등 다른 카드 사용액 1조원과 현금을 가져와 환전해 쓰는 돈 7000억원을 합하면 연 2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문제는 이들의 한국관광 만족도가 너무 낮다는 거다. 서울시가 7~8월 실시한 '서울방문 외래관광객 실태조사'에서 요우커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87로 평균(3.99) 이하에 머물렀다. 미주와 유럽(4.13)은 물론 동남아(3.96)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열악한 숙박시설(39.1%),부실한 음식(18.7%),중국어안내 부족(16.1%) 등 관광 인프라에 대해서 '미흡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가장 심각한 건 숙박시설 부족이다. 서울의 작년 말 객실 수는 2만3645실로 적정규모인 4만실에 턱없이 못 미친다. 4000여실이 건설 중이지만 당분간은 객실난을 덜기 어려운 실정이다. 예약이 넘칠 때 요우커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러브 호텔'에서 잠을 자는 희한한 경험을 하거나 경기도 일대로 밀려나기 일쑤다. 관광업계에는 쇼핑은 서울에서,잠은 경기도에서,관광은 제주도에서 한다는 우스개까지 나돈다.

일부 기념품매장의 바가지 상혼도 한국 이미지를 흐리는 요인이다. 비슷한 품질의 인삼을 몇 배씩 비싸게 파는가 하면 불량 인삼가루를 최고급으로 속이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모양이다. 동남아 기념품점에서 정체불명의 보신제를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파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무자격 가이드가 활개치는 것도 고쳐야 할 점으로 꼽힌다. 현재 활동 중인 중국어 가이드 1000여명 가운데 80%가 무자격자다. 자격증을 가진 가이드가 3000명쯤 되지만 무자격 가이드들이 만든 장벽에 막혀 활동을 못하고 있단다.

요우커는 저가 단체 관광에서 선진국형 개별 관광으로 급속하게 옮겨가고 있다.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올 상반기 발급한 비자의 절반 이상이 개별 비자다. 개별 관광객은 돈을 더 쓰기 때문에 '노다지'로 통한다. 구매 패턴도 기념품 위주에서 벗어나 고급 생활용품과 명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요우커를 위한 맞춤관광까지는 몰라도 먹고 자고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기본'만은 꼭 갖춰야 한다. 그게 한국관광이 살 길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