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업의 피'를 맑게 하자
물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회적 신뢰성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기업윤리 측면에서는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다. 원래 이 이야기는 "완벽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고,또한 모든 인간은 결점이 있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윤리와 규범을 강조하게 되면 원활한 인간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업 활동도 사람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소 물의를 일으켰던 기업이 엄청난 실적을 달성해 인정받는 때도 있고,명성이 높은 유망한 대기업이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한순간에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례도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윤리의 실천은 '이익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본질'에서 볼 때에는 그 적용에 한계점을 느끼게 된다.

기업윤리란 기업이 지켜야 할 도리와 규범을 말하며,이는 최고경영자(CEO)나 창업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하는 중요한 과제다. 그렇다면 기업윤리는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최근 필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상장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회계 투명성'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공인회계사로서 일하면서 느껴왔던 점을 정리해 발표했다.

물론 '기업윤리는 투명한 회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 요지였다. 강의 중에 신용평가나 배당재원의 확보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회계부정을 범하기도 한다는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아무리 기업이 윤리경영을 실천한다고 해도 '절대적인 선(善)'에는 부합할 수 없다는 의견까지 있었다.

회계란 재산과 수입 및 지출의 관리와 운용에 관한 제도,즉 돈의 흐름에 관한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분식회계나 회계부정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부정한 자금을 유용할 목적으로 기업윤리를 저버리는 것은 이를 지시한 최고경영자뿐만 아니라,지시에 따라 행동한 기업 임직원 모두가 윤리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기업에 있어 자금은 사람의 혈액과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람은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피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사고 등 긴급한 경우에도 헌혈을 할 수 있다. 투명한 회계는 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피를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자칫 혼탁해질 수 있는 유혹과 압력에 맞서 자정능력을 발휘해 준다.

요즘은 '기업윤리의 실천'이 화두다. 그러나 아무리 이를 강조해도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으면 모두 구호에 그치고 만다.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다 해도,기업의 피는 항상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아야 하며,이를 위해 회계의 투명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권오형 < 한국공인회계사회장 kohcpa@kicp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