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구조조정 '칼바람' 분다
제약사들이 채산성이 극도로 나빠질 것으로 보고 대대적인 감원,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정부가 내년부터 약가를 평균 14% 일괄 인하하기로 한 데 따른 자구책이다. 일부 중소제약사는 인수 · 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지만,얼어붙은 시장 분위기상 '사자'는 쪽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제약협회는 2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약가 일괄인하를 결정한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재산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하고,이달 중 제약인 총궐기대회를 갖기로 결의했다. 궐기대회가 열리는 하루 동안 전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약가 인하 후폭풍,구조조정 돌입

한국사노피아벤티스는 최근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전격 가동,제약업계의 구조조정에 신호탄을 올렸다. 세계 5위권 내에 드는 글로벌 제약사의 국내 지사인 한국사노피아벤티스는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확정 · 발표된 지난달 31일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근속 연수 두 배에 8개월 급여를 더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조건이다. 이에 대해 오영상 사노피아벤티스 노조위원장은 "내년도 약가인하에 따른 손실을 감안,명예퇴직이 아닌 사실상의 정리해고"라고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약가인하 고시 직후 사노피가 곧바로 구조조정을 시작한 것 같다"며 "현재 감원이나 희망퇴직을 계획 중인 다른 제약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노피를 포함한 다른 다국적 제약사 10개 노조도 일제히 인력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는 연대 성명서를 냈다. 화이자,노바티스,바이엘,BMS,와이어스,아스트라제네카,갬브로,근화제약,사노피파스퇴르 연대 노조는 이날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예상되는 매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축적된 이익의 재투자를 외면한 채 곧바로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제약사들도 구조조정 칼바람이 거세다. S제약이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고,D제약은 직원 50% 감축에 들어갔다. 또 B제약은 이미 영업사원 30명을 줄였다. 상위제약사인 H제약은 최근 영업실적이 부진한 사원을 대상으로 인원 30% 감축에 들어갔다.

대신증권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동아제약 대웅제약 유한양행 한미약품 종근당 등 상위제약사 5곳을 대상으로 약가인하 정책이 시행되는 내년도 실적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이들 제약사의 평균 약가인하율은 33.4%에 매출액 감소율은 평균 8%,업체당 516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M&A 매물 나와도 살 곳 없다"

일괄 약가인하의 여파로 제약업계에 M&A설이 파다하다. 기존 M&A 매물로 거론됐던 국제약품을 비롯해 우리들제약,근화제약,조선무약,보람제약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형 제약사나 타업종 기업들이 물밑에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견제약사 관계자는 "중소 제약사들이 최근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이 보유한 (의약품) 품목이 거의 제네릭(복제약)으로 비슷해 합병의 시너지가 별로 없다"며 "내년부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상위 업체들끼리의 합병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