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11] "美ㆍ유럽 리더십 붕괴…1차 大戰 후 최대 위기 1~2년 갈 것"
[글로벌 인재포럼 2011] "美ㆍ유럽 리더십 붕괴…1차 大戰 후 최대 위기 1~2년 갈 것"
폴 볼커 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은 유럽의 국가 부도 위험에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앞으로 1~2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각국의 대응이 미흡할 경우 더욱 장기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볼커 전 위원장은 2일 '글로벌 재정위기,해법은 없나'를 주제로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과 가진 글로벌 인재포럼 대담을 통해 "그리스는 이미 디폴트(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유럽 대륙으로 위기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련의 위기가 복지제도와 세제 개편을 불러와 국가별 체질 개선과 개혁을 앞당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 위기 타개를 앞당길 수 있는 해법은 '리더십 회복'과 '인재 양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침체기"

볼커 전 위원장은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해 "1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침체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위기의 근원에는 각국 경제의 엄청난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다"며 "중국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지만 미국은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이렇게 차이가 벌어지도록 국제 사회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라며 "글로벌 리더십이나 구심점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위기 타개책으로 리더십의 회복을 주문했다. 우선 유럽 차원의 통합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유로화가 만들어졌지만 '규율'이라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브뤼셀 등에 유럽재정을 총괄하는 곳을 두고 권위를 갖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집중적인 규율 집행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볼커 전 위원장은 또 "이번 위기의 원인은 결국 국제통화체제의 개혁이라는 문제로 귀결된다"며 "20~30년 전만 해도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다시 (국제통화체제 개혁을)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독일 등 일부 강력한 국가들이 '왜 우리가 남의 문제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고 말해 정치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G20,구체적인 액션 플랜 내놓아야"

볼커 전 위원장과 사공 회장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국가별 재정 불균형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조정 기구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3~4일 이틀간 열리는 G20 프랑스 정상회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볼커 전 위원장은 "30여년 전 G5가 개최될 때 참여했다"며 "당시에도 국가 간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만큼 20개 국가 정상이 합의를 이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G20 정상들이 국제적인 정책 공조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며 "각국의 정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적완화 한계…시스템 바꿔야"

볼커 전 위원장은 "통화 정책 측면에서는 유럽이나 미국 모두 남아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3차 양적 완화와 같은 극단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낮게 봤다. 최근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단기국채를 팔고 장기국채를 사들여 장기금리를 낮추는 방안)'를 통해 여력을 상당 부분 소진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가 현재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농담까지 섞었다.

볼커 전 위원장은 "이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은 무엇보다 한계에 달한 기존 세제를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시스템과 인프라 정비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키는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험 등의 복지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재 양성을 위해 장기적 안목의 교육을 강화할 것도 주문했다.

◆"포퓰리즘, 개혁 걸림돌 될 수도"

그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경우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황이지만 고령화 대책 등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정치적 상황이 경제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내년 대통령 선거 등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관건으로 꼽았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을 통해 개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볼커 전 위원장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법안과 관련해 "미국 의회에서도 FTA에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왔지만 한국 국회에서 이처럼 격렬한 반대에 부딪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며 "국제 이슈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토빈세 등 투기자본 규제 강화 필요"

볼커 전 위원장은 볼커룰의 입안자답게 은행의 자기자본 투자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골드만삭스,메릴린치,베어스턴스 등 투자은행(IB)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은행이 아니면서 은행인 척하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한국 등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에 대한 구분을 통해 투자 리스크의 무분별한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한 '토빈세'에 대해선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토빈세는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국제 투기자본의 급격한 자금유출입에 의해 통화위기가 촉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다. 볼커 전 위원장은 "최근 금융시장이 복잡해지면서 토빈세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며 "런던 금융시장이 침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영국이 (토빈세에) 반대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유럽은 실험적으로 도입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과세 방법 등 구체적인 집행 방안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경봉/김일규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