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역발상 승부'…"경쟁사 힘들 때 투자해야 빅3 도약"
기아자동차가 2일 중국에 연산 30만대 규모의 제 3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위기 때 강한 면모를 보여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승부근성에 또다시 주목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글로벌 경기가 꺾이며 자동차 수요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설비확장'이란 공격경영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치고 단일 국가로는 세계 최대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입지를 더욱 튼튼히 해 '글로벌 빅3'에 진입하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중국에 '통큰 베팅'

정 회장은 이날 중국 당국과 기아차 제 3공장 투자협의서 체결에 앞서 장쑤성 옌청에 있는 현지 공장(둥펑웨다기아)을 방문한 자리에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중국 자동차 수요에 적극 대응해야 중국 내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며 증설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그동안 "올해는 질적성장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해왔다. 올 상반기엔 공장을 증설해달라는 미국 현지 법인의 건의를 단호히 물리쳤다. 하반기 들어 경기침체 여파로 미국 자동차 수요둔화가 우려되자 미국 공장 증설 주장은 자취를 감췄다. 그런 정 회장이 중국에서 양적성장 카드를 빼든 것은 중국 시장의 성장속도와 경쟁구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관영 정보센터인 SIC는 내년 중국 승용차 시장 수요가 올해 1112만대보다 14.2% 증가한 1270만대에 달하고 2014년에는 1793만대,2015년에는 1960만대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가 침체될 조짐을 보이지만 중국 자동차 시장은 미국 · 유럽 등 선진시장과 달리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시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을 증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제 3공장을 내년 말 착공해 2014년 하반기 완공키로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주춤거리고 있지만 제 3공장이 완공되는 2014년께는 다시 고성장 기조를 보일 것이라는 계산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 GM과 한판 승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빅3'에 진입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중국 시장 점유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폭스바겐과 GM은 올 들어 대규모 투자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 9월 이사회를 열고 중국 합작회사인 상하이폭스바겐과 이치폭스바겐에 2016년까지 총 190억달러를 투자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상하이폭스바겐과 이치폭스바겐은 각각 1~2개의 공장을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상하이폭스바겐은 2010년 73만대에서 2013년 134만대,이치폭스바겐은 91만대에서 166만대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GM도 지난해 76만대에서 2013년 200만대로 생산능력을 확충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 · 기아차는 중국 점유율 3위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밀리면 '글로벌 빅3' 진입은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질적성장을,수요가 급증하는 중국에서는 질적성장과 양적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수요증가에 대응한 양산체제를 제때 갖추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감성품질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컬업체 견제와 남서부 공략

정몽구 '역발상 승부'…"경쟁사 힘들 때 투자해야 빅3 도약"
중국에서 기아차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판매가 급증한 점도 증설 배경으로 꼽힌다. 올 들어 10월까지 기아차의 중국 판매 증가율은 26%로 현대차 판매 증가율(7.2%)을 훨씬 웃돈다. 중국 완성차업체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세다.

기아차 현지법인 관계자는 "1,2공장을 합쳐 43만대 생산체제를 풀가동하고 있다"며 "야근 · 특근까지 하면 내년에는 48만대까지 생산해 수요를 맞출 수 있겠지만 2014년부터는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폭스바겐 GM 등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뿐만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로컬업체의 성장을 견제하면서 시장지위를 탄탄히 하겠다는 전략도 깔린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