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2차 구제금융안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하면서 유로존이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을 비롯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 유럽의 수뇌부는 2일(한국시간 3일 새벽)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유로존은 물론 세계 경제의 운명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벌이는 그리스가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유럽 수뇌부 총출동

그리스의 '도발'…유럽 수뇌부 긴급 회동
진통 끝에 나온 유로존 해법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자 유로존 정상들은 약속대로 합의안을 이행하라고 그리스를 압박했다. 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긴급 전화 회동을 가졌다. 전화 회동 직후 독일 정부는 "최근 정상회의에서 내놓은 대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지금은 합의사항을 신속하게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3~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2일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긴급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장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드라기 ECB 총재, 라가르드 총재 등도 참석한다. 이들은 G20 정상회의 이전에 국민투표안을 철회하라고 그리스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융커 의장은 "그리스 구제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 연내 디폴트 맞나

그리스가 연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달 중순 IMF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받기로 한 1차 구제금융의 마지막분 80억유로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그리스는 앞서 이달 중순까지 80억유로를 받지 못하면 디폴트를 맞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DPA통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12월 국민투표 때까지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무부 관계자는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은 12월까지는 구제금융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일 수 있다"며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국민투표가 유럽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하고 그리스의 무질서한 디폴트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씨티증권은 파판드레우 총리가 4일 투표에서 신임을 받지 못하면 야당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함에 따라 국민투표가 취소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국민투표가 취소된다고 해도 그리스의 정치 불안이 높아져 순조로운 구제금융 집행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투표는 2차 구제금융안의 세부안이 마련된 뒤로 이르면 12월 중순쯤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구제금융안에 포함된 연금 삭감 등 재정긴축에 대해 국민들이 연일 반대 시위를 벌이자 국민투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