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날개 단 대한생명, 글로벌 시장으로 ‘훨훨’
대한생명의 역사는 곧 국내 생명보험 산업의 역사다. 1946년 국내 최초의 생명보험사로 설립된 대한생명은 반세기 동안 국내 보험산업의 발전을 선도해 왔다.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부실의 늪에 빠지면서 퇴출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2002년 한화그룹에 인수된 이후 안정된 경영체제와 건실한 재무구조, 강화된 영업력을 바탕으로 제2의 도약을 일궈냈다. 지난해 3월에는 대형 생보사 중 처음으로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하면서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보험사로 거듭났다. 2009년에는 생보사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해외시장 개척에도 앞장서고 있다.

◆3조원 부실 털어내고 정상화

1999년 늦은 봄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회의실. 하반기 경영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김승연 그룹 회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사장단 10여명이 모였다. 회의가 시작되자 김 회장이 대뜸 말했다. “대한생명 인수를 검토해 봅시다.”

사장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시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대출로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를 받고 있었다. 누적결손금만 3조원에 달했고 보험사의 핵심인 영업조직은 붕괴 직전 상황이었다. 참석한 사장들 대부분은 “자칫 그룹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며 인수에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외환위기 때 계열사 수를 37개에서 17개로 줄이면서 그룹이 많이 위축됐다”며 “구조조정 덕분에 여유자금이 1조원 정도 있으니 향후 주력사업으로 금융업에 집중해보자”고 설득했다.

그로부터 3년여 뒤인 2002년 12월. 한화컨소시엄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김 회장은 금융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당시 맡고 있던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모두 버리고 2년 동안 무보수로 대한생명 대표이사에만 전념했다.

김 회장은 인수·합병(M&A) 후유증을 없애고 조직과 경영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기존 대한생명 경영진을 대부분 중용했다. 한화그룹에서 파견된 임직원은 20여명에 그쳤다. 화학적 통합에도 힘을 쏟았다. 대한생명의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였고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객 중심’의 비전을 제시했다. 보험영업 자산운용 상품개발 리스크관리 등 모든 부문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선진경영 시스템 구축에도 주력했다.

◆10년도 안 돼 자산 2배 이상 성장

한화그룹으로 인수된 이후 대한생명은 빠른 속도로 정상화됐다. 한화그룹으로 인수된 지 1년 만에 총 자산이 30조원을 넘어섰고 2008년에는 누적결손금을 모두 털어냈다. 지난 3월 대한생명의 총 자산은 63조7239억원으로 인수 당시(29조598억원)와 비교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수입보험료는 9조4578억원에서 11조975억원으로 20%가량 증가했다. 창립 첫해 수입보험료가 100만원, 연간 수입보험료가 1조원을 넘어선 시점이 1987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급속한 성장세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보험사 자산 건전성의 지표로 여겨지는 지급여력비율도 인수 당시 95.6%에서 267.2%로 대폭 개선되면서 선진 보험사 수준인 200%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달에는 국내 3대 신용평가기관인 한신정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로부터 보험금 지급능력에 대해 최고등급인 ‘AAA’를 받았다.

올해 상반기 경영실적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눈에 띄게 좋아졌다. 수입보험료는 작년 동기보다 4324억원 증가한 5조5851억원을 기록했고 월납 초회보험료는 27억원 늘어난 155억원에 달했다. 보험영업 효율을 나타내는 13회차 유지율은 지난해보다 7.6%포인트 상승한 84.2%, 설계사들의 1년 정착률은 52.1%로 작년에 비해 10.6%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한생명은 당기순이익을 제외한 총 자산, 수입보험료, 월납 초회보험료 등 주요 경영지표에서 삼성생명에 이어 생보업계 2위를 차지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기순이익은 아직까지 교보생명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올해 회계연도에는 순이익 측면에서도 확실한 업계 2위 수준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시장 개척으로 ‘글로벌 경영’ 선도

대한생명은 미래 수익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아시아 및 해외 유망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9년 4월 국내 생보사 처음으로 베트남 보험시장에 뛰어들었다. 베트남 현지법인은 영업 개시 2년 만에 신계약 2만건을 돌파했고 작년에는 330만달러의 초회보험료를 거둬들여 전년 대비 67% 신장했다.

호찌민 2곳과 하노이 1곳 등 3개로 시작한 영업점은 닥락 칸호아 동나이 등에 추가로 개설되면서 12개로 증가했다. 450명에 불과했던 설계사 수는 5000명에 다가서며 견실한 보험사의 틀을 갖췄다.

베트남 법인은 내년까지 다낭 껀터 하이퐁 등 대도시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지점 수를 22개까지 늘려 전국적인 영업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3년 안에 설계사 수를 1만명까지 늘리고 연간 수입보험료도 3500만달러를 올려 신규계약 시장점유율을 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대한생명은 또 2009년 중국 항저우 저장성국제무역그룹과 합작 생보사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내년 초 본격적인 영업에 나설 방침이다. 이 밖에 인도네시아 인도 등 동남아 신흥시장에도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