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을 찾아서] 김태자 한국궁중자수연구원 대표…실과 바늘로 소원 수놓는 전통문화 '大母'
자수(刺繡)는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오래걸리는 전통공예 중 하나다. 손바닥 두 개 크기의 작은 작품을 만드는 데 보름 정도,높이 2m · 폭 1m의 큰 작품을 만드는 데는 1년 정도 걸린다. 오랜 시간 동안 한땀 한땀 놓는 모습은 기도하는 것처럼 경건하다. 김태자 자수공예 명장(67)이 이 분야에 입문한 건 1964년이다. 제주에서 취미로 자수를 배우다가 상경해 베스타자수연구소에 들어가 고(故) 문정임 씨의 가르침을 받았다. 인내와 침묵으로 다져온 세월이 벌써 반백년 가까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자수장 교육조교)이기도 한 김 명장은 한국 전통문화의 '대모(大母)'다. 1991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뒤 감춰져 있던 그의 실력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UNESCO) 아시아 · 태평양 수공예상 대상을 받아 세계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궁중자수연구원 대표를 지내고 있고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한국전통문화대,숙명여대 등에서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 중이다.

김 명장의 작품은 대부분 '스케일'이 크다. 작은 작품보다 1년 내내 걸리는 대작을 즐겨 만드는 편이다. 2000년 서울에서 '제3차 아시아 · 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렸을 때 회의장 벽에 걸려 화제가 됐던 '오봉산일월도(五峰山日月圖)'도 김 명장의 손을 거쳤다. 높이 2.6m,폭 4.8m의 대작인 탓에 다른 7명의 자수공예사와 함께 7개월 동안 일했다고 한다. 때문에 김 명장이 가장 능숙하게 사용하는 자수 기법은 큰 면적을 메우는 데 주로 사용되는 '자릿수 기법'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현대 서양 자수 기법을 접목하는 '실험적 시도'도 하고 있다.

그러나 김 명장은 단순히 실과 바늘만으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소원(所願)을 비는 마음'도 함께 들어간다. 바위 · 해 · 거북이 등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을 수놓을 때는 그 작품을 받을 사람이 장수하게 해달라고 빈다. 석류를 수놓을 때는 다산(多産)하게 해달라고,잉어를 놓을 때는 취업 · 출세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김 명장은 "경건한 마음으로 한 땀 꿸 때마다 소원도 함께 꿴다"며 "물건을 받는 사람이 행복해져야 만든 나에게도 좋은 일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마음으로 수를 놓기 때문에 김 명장의 마음가짐이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면 배색이 잘되지만 어두운 마음으로 하면 작품 색도 어둡게 나온다"는 설명이다.

김 명장은 현재 미국 뉴욕아트다지인박물관에서 1~3일(현지시간) 일정으로 '코리안아이' 전시회를 하며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코리안아이는 SC제일은행 아모레퍼시픽 대한항공 등이 후원하는 행사로 한국 디자이너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여는 작품전이다. 김 명장은 쌍학흉배(雙鶴胸背),후수(後綏),태극문 보자기 등 총 70여점을 전시했다. 미국의 학자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자수공예 시연 · 강의 워크숍도 한다. 그는 "내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게 꿈"이라며 "내년에는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