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曰' 그만…인문학 '융합의 길'을 찾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통합 또는 융합에 대한 기대가 크다. 거기에는 세부적인 분과학문에 갇혀 이른바 '전문 바보'처럼 지냈던 스페셜리스트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의 문명사적 전환기에 인간과 사회를 새롭게 전망하려는 제너럴리스트의 열망이 담겨 있다.

대학 교양교육의 기초인 말하기와 글쓰기 과목도 관습적으로 특정 분과학문에 의해 지배된 낡은 도구 교과목에서 벗어나 인문 · 사회 · 자연 전반에 걸쳐 통합 또는 융합의 통찰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인간의 중요한 언어 능력이고 사고 행위이지만 말과 글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말은 요동치고 유동하는 삶과 함께 격류하지만 글은 그 격류를 초월해 삶의 법칙적인 궤적을 사유하는 것이다. 범인의 삶은 주로 말로 표현되고 말과 함께 스러져 가는 반면,성인의 삶은 글로 표현되고 글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쉰다.

하지만 성인의 글도 인간의 언어 행위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과연 인간의 언어 행위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함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조선 말기 문장가인 이건창(李建昌 · 1852~1898)은 《명미당집(明美堂集)》의 '풀을 뽑는다(除草說)'란 글에서 조선시대 오랜 인문전통 중심이었던 성인의 글을 회의한다.

"내가 일찍이 초(楚)나라 굴평(屈平)의 《이소(離騷)》를 읽은 적이 있는데,그 사람은 향기로운 좋은 풀을 군자에 빗대어 그것이 번성함을 바라고 그것이 시듦을 마음 아파하여 그 정이 넘쳐 그치지 않았다. 어찌 그 성품이 군자에 가까워 취할 바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대개 공자(孔子)도 일찍이 향기로운 난초를 탄식한 적이 있었지만 공자 이전의 주공(周公)으로 거슬러 올라가 순(舜),고요(皐陶)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지은 시가(詩歌)나 다른 곳에 기록된 말에서 향초를 좋아하여 취했다는 것을 듣지 못했으니 또 어째서인가. 어쩌면 옛 성인의 군자와 같은 성품이 또한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서인가. "

이건창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발전시킨다.

"대개 천지는 마음이 없고 운화(運化)가 있다. 운화가 왕성하면 천지의 마음이 사람의 정보다 넘치는 것 같다. 하강하여 쇠퇴하면 취향을 달리하는 것 같아 보인다. 《시》《서》《역》을 지은 성인이나 중세 이하 사람들이나 각각 자기가 만난 시대가 그러했음을 말한 것뿐이다. 미친 것도 아니고 속인 것도 아니다. 성인은 공자부터 시작해서 천지에 의혹이 없지 않았다. 이에 헛된 글을 지어 곤룡포로 삼고 도끼로 삼아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아아! 곤룡포로 삼고 도끼로 삼으면 과연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는가. 또한 그 마음을 스스로 쓸 곳이 없어 우선 이것으로 발분하려는 것인가. 그것이 내가 내 정원에서 풀을 뽑는 것보다 오히려 나은 것인가. "

유교적인 인문 전통에서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복선화음(福善禍淫)에 대한 성찰은 오래됐다. 복선화음에 대한 지식인들의 관심과 접근은 서로 달랐지만 어느 쪽이든 유교의 인문 전통 내부에 있는 복선화음의 관념을 통해 자기 시대에서 요청하는 인간의 윤리적 자각과 수신의 요체를 얻으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성인이 남긴 글,곧 경서(經書)는 인문적 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었고 그것에 대한 철학적 해석학이 시대마다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성인이 경서에서 군자는 복을 받고 소인은 재앙을 받는다고 말했어도 우리의 삶에서 체험하는 사실과 성인의 글에서 전달하는 말씀 사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성인의 글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성인의 글을 열심히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인의 글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성인은 하늘의 도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의 글에도 언어적 한계가 내재한다. 공자조차 군자에 대한 비유적 실체로 향초를 제시했지만,그 비유는 아득한 지치(至治) 시대의 감각,곧 잡초의 감각을 회복하지 못하고 역사 시대의 감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아,사람들이여!" 이건창은 마음 속으로 묻는다. "인문학은 사실 성인의 글을 연구하는 경학이 아니다. 그럼에도 훈고와 의리를 반복하며 끝없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이 거대한 분과학문들을 보라.이 협소한 스페셜리스트들을 보라.나는 성인의 글이 부과하는 언어적 질서에서 벗어나 직접 천지의 도와 만나겠다. 성인의 글에서 향초의 군자를 읽느니 천지의 운화에서 잡초의 군자를 뽑으련다. 19세기 후반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나는 새로운 인문학을 꿈꾼다. 진정한 인문학은 성인의 글을 읽는 스페셜한 글공부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체험하는 제너럴한 마음공부이다. "

노관범 < 가톨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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