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보험사기
보험사 직원 월터는 디트리히슨이란 고객의 아내 필리스에게 끌린다. 곧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디트리히슨을 살해하고 보험금을 타낼 음모를 꾸민다. 이들은 디트리히슨을 속여 상해보험에 들게 한 다음 살해한다. 하지만 필리스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월터는 그녀를 죽이고 사건 전모를 털어놓는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 '이중 배상' 줄거리다.

보험사기에선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인 경우가 많다. 작년 4월 인천의 한 모텔에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낙지를 먹다 쓰러졌다"는 남자친구의 진술에 따라 사고사로 처리됐지만 보험금을 노린 계획살인 혐의가 잡혀 재수사중이다. 이른바 '낙지 살인사건'이다. 반신불수 노숙자를 벽돌로 내리쳐 중상을 입힌 뒤 수천만원을 타낸 사례도 있다. 이들은 5억여원을 더 받아내려다 꼬리를 밟혔다. 휴대폰만 병원에 '입원'시키는 수법도 등장했다. 발신지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을 병원에 두고 간호사가 대신 받는 식으로 20여억원을 빼돌렸다고 한다.

가벼운 교통사고로 위장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끔찍한 자해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달 20일 손가락을 잘라 2억여원을 타낸 전직 보험설계사가 붙잡혔다. 20억원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후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작업 중 다친 것으로 위장했다. 그 며칠 전엔 60대 남성이 혀를 깨물어 3분의 1 이상 절단하고 차에 치였다며 보험금을 타내려다 덜미를 잡혔다.

급기야 강원 태백에서 400여명이 허위입원 등의 수법으로 140억원을 타낸 대형 보험사기 사건이 터졌다. 병원장과 사무장 7명,전 · 현직 보험설계사 72명,주민 331명 등 410명이 연루됐다. 태백시 인구(5만여명)의 0.8%나 된다. 보험설계사들은 지인들에게 허위 입원 방법을 알려줬고,병원은 입원기간 중 주민등록등본을 떼지 말고 카드도 쓰지 말라는 등 교육도 시켰다. "보험금을 못타면 바보"란 말까지 돌았다. 그야말로 집단 모럴 해저드다.

올 상반기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3만529명, 타낸 보험금은 1844억원이었다. 작년보다 적발인원은 31.5%,금액은 15.5% 늘었다. 검거 비율은 10% 선에 불과하단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잡기 어려운 탓이다. 90%가 빠져나간다면 사기 유혹은 자꾸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험 다양화 시대의 그늘이다. 단순히 관리감독 강화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아 걱정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