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기상에 관능미 접목…숨겨진 아름다움 찾아냈죠"
소나무는 십장생 가운데 하나로 장수(長壽)를 의미한다.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사시사철 푸르러 꿋꿋한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서울 팔판동 한벽원갤러리에서 오는 9~17일 개인전을 여는 한국화가 홍소안 씨(54)는 30년 동안 소나무를 그려왔다. 홍씨는 "화면 속에 뛰어든 소나무들은 소중한 대화 상대지 복잡한 의미 같은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홍씨는 명산과 고궁,들녘의 풍광을 담은 소나무 답사 기행과 그 현장을 조형화해왔다. 1994년 대한민국미술대전과 1996년 MBC 금강미술대전 특선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기술 발전 속도에 눌려 에너지와 호흡을 잃어가는 소나무를 안타까워했다. "물질 만능으로 변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소나무의 초월적 존재감을 못 느끼고 있어요. 문명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이 제 작업의 목적입니다. "

홍씨는 늘 소나무를 '그놈들'이라고 부른다. 소나무와 대화하면 폭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수십 차례 설악산 지리산 오대산 등 유명산은 물론 영주 봉화 남원 서산 함양 장수 등의 소나무를 찾아다녔다. 모든 산에 있는 소나무가 그의 손에 의해 특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작가적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사람의 색깔이 오방색이라면 나무는 곧 소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굳이 꼽으라면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서 발견한 소나무죠.버드나무처럼 가지가 많아 영기가 서려 있는 것 같았어요. "

전국을 돌며 300~500년 된 소나무를 스케치하러 다니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울산 감포의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해송 '소나무 할머니'는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전북 장수군청 앞 '논개 소나무'는 어린 나이에 왜장을 붙들고 진주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애국혼을 기리기 위해 심었답니다. "

그는 최근 소나무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래서인지 생동감이 더 커지고 에로틱하기도 하다. 휘어지고 구부러진 소나무가 관능적 미감으로 승화되고 있다. 신성(神聖)에 관능을 추가한 것이다. 재료에서도 아크릴과 수묵을 혼용하고,한지 대신 광목 천 등을 이용해 구기고 부비는 방법으로 파격미를 더했다. "광택이 있는 천이나 화학섬유를 캔버스로 과감히 차용했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위해 서로 다른 재료들을 과감하게 섞어 조형화한 것이죠." (02)732-377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