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회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어느 날 어두운 숲을 헤맨다. 길을 잃은 단테는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천국을 둘러보게 되는데 7일 6시간 동안 저승세계를 돌아보면서 쓴 시가 바로 영원불멸의 걸작 '신곡(神曲)'이다. 단테가 지옥에 이르러 입구에 써 놓은 글귀를 보았다. 그 지옥의 문에는 '이 문을 들어온 자,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말은 지옥에서는 어떤 희망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고,가져지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19세기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천국으로 가는 시에서 "신이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나는 부나 권력을 달라고 청하지 않겠다. 대신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과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영원히 늙지 않는 생생한 눈을 달라고 하겠다. 부나 권력으로 인한 기쁨은 시간이 지나가면 시들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생생한 눈과 희망은 시드는 법이 없으니까"라고 적고 있다.

단테와 키에르케고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희망'이다. 곧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개인의 마음 속에 희망이 없으면 자신이 사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1년 대한민국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 '희망'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잘될 것'이라는 희망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갖는다. 희망은 절망과 좌절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이며,힘이다. 전쟁의 잿더미와 보릿고개를 넘어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적을 일궈낸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자체가 희망의 역사다. 국민의 희망을 살리는 것은 정치인의 의무요,또 국민의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들에게 정치와 국가는 '희망'보다 '실망'을 드리고 있다. 정치와 국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제시해야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로 시작되는 푸시킨의 시는 삶의 고달픔을 간명하고 아름답게 위로하며,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다.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반대 디스토피아(Dystopia)는 '지옥향' 혹은 '암흑향'을 뜻한다. 우리는 디스토피아의 협곡에서도 희망이라는 아득한 봉우리를 끈질기게 바라보아야 한다. 죽음을 앞둔 중환자실에 들어가면,건강한 몸을 가진 것만으로 행복하다. '힘들다' '어렵다' '죽고 싶다'고 포기하지 말자.

우리 자신에게 희망을 걸어 보자.마음만 바꾸면 절망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어려움도 힘들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자.

전현희 < 국회의원 elysiaj@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