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내년 증시서 돈 벌려면 '프로 보노' 장세 읽어라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내년 증시서 돈 벌려면 '프로 보노' 장세 읽어라
특정국의 주가를 결정하는 커다란 요인 중 하나가 정책변수다. 지난 9월부터 '부양'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한 각국의 거시경제 기조가 갈수록 그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올 9월 미국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발표한 데 이어 추가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벤 버냉키 중앙은행(Fed) 의장은 필요할 경우 3차 양적완화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도 경기침체의 주범인 엔고를 저지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주에는 그 규모만 10조엔에 달했다.

마침내 유럽도 기준금리를 내렸다. 전통적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안정을 중시한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여전히 ECB의 물가목표선을 1%포인트 상회한 상황에서 단행된 이번 조치는 획기적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위기 극복과 경기 부양 의지가 강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지난 1년 반 이상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려온 신흥국의 거시경제 기조도 최근에는 바뀔 조짐이 뚜렷하다.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성장이 훼손당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선진국처럼 뚜렷하지 않지만 최소한 물가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수정되고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내년 증시서 돈 벌려면 '프로 보노' 장세 읽어라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이번에는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특히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종전의 부양책에서 고용지표는 대표적 경기후행 혹은 종속변수로,성장률만 끌어올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고용지표가 갈수록 독립 혹은 설명변수화되는 추세를 각국의 부양책에서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오히려 이런 새로운 변화를 읽지 못하고 성장률만 끌어올리면 소득양극화와 이에 따른 사회 불안이 심화돼 런던 폭동사태,반월가 시위에서 보여준 것처럼 민주주의 골간이 흔들리게 된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각국은 고용을 우선적으로 창출해 소득과 소비가 함께 늘어나면 성장 목표는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부양책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년에는 미국 등 중심국일수록 선거가 많이 예정돼 있는 데다 갈수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익숙한 청년층이 선거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높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경기부양 방향은 의외로 빨리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부양책이 성공하려면 재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시장과 시스템에 많이 의존하는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국들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위험수위를 넘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페이-고(pay-go)' 정책이 추진될 것이 확실시된다. 전체 지출 규모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공무원 임금과 같은 일자리 창출효과가 적은 일반 경직성 경비를 삭감(pay)하고,여기서 마련된 재원을 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과 같은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쪽으로 몰아(go)주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이다.

대기업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버핏세 부과와 기부문화도 권장 ·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년에 선거가 예정돼 있는 국가일수록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동참하는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해야 고용과 사회불안을 해결하면서 경기와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자리 창출을 우선하는 부양책은 증시 입장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앞으로 증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크게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즉 구조변화가 순조롭게 이행되느냐에 달렸다고 월가는 보고 있다. 일부에선 이 현상을 앞말이 뒷말을 끌어주는 '밴드왜건 효과'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주가가 상승하기 위한 세 가지 패러다임 시트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 의해 주도돼 온 경기가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오느냐의 여부다. 한 나라의 경기가 민간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설비투자가 늘어야 한다. 그중 고용이 중요하다.

각국의 성장이 갈수록 정보기술(IT) 등에 의해 주도되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용이 늘어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들 산업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돼 '고용 없는 성장'이 보편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각국의 부양책에서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둬 추진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기대를 갖게 하는 변화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