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중구난방 한나라당 쇄신
한나라당 쇄신 논의가 산으로 가는 양상이다. 10 · 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정제되지 않은 쇄신 목소리가 우후죽순격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자기쇄신엔 인색한 채 책임을 청와대 등 다른 곳으로 떠넘기거나 현실성 없는 대책을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의 방안을 내놓으면서 혼선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분출하는 쇄신 주장을 교통정리할 지도력도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의원 25명은 6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지만 당장 당내에서조차 반발이 적지 않다. 내곡동 사저 문제와 측근 낙하산 인사,정부의 반서민 정책 등이 선거 패배의 주원인이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으나 "너희들부터 자성하라"는 반발에 부닥친 것이다. 김영우 의원은 "쇄신은 자기 쇄신이 먼저 아니겠는가"라고 했고,한 중진 의원도 "다 죽어가는 대통령을 공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비판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홍준표 대표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사퇴를 주장했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 직후 당내에선 내년 4월 총선에서 현역 의원 중 절반 이상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그 일환으로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과 같은 공개 오디션 형식으로 공천을 실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구 245곳을 이런식으로 하다보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절반 물갈이론'은 2주 만에 쏙 들어갔다.

홍 대표는 쇄신을 위해 중앙당사를 없애고 그 기능을 국회와 지구당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여의도의 한 빌딩 7개층을 임차해 쓰고 있는데,국회에는 이를 수용할 공간이 없다는 게 국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 최고위원들조차 당사 폐지가 과연 국민 실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정치적 쇼'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없어 백지화했던 부유세 도입을 검토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한마디로 혼란스런 상황이다. "그동안 쇄신을 한다며 아무것도 못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면서 선거에 지니까 다시 쇄신을 요구하면 국민이 웃을 것"이라는 한 당직자의 말이 현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다.

도병욱 정치부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