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퇴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산안이 의회에서 가결됐으나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유럽 재정위기의 수습에 난항이 예상된다.

AFP 등 외신은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하원이 이날 표결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 321명이 대거 기권한 가운데 찬성 308표로 예산 지출 승인안을 가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전체 하원 의석 630석 중 과반인 316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AFP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며 "그가 이끄는 집권 자유국민당(PDL)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야당은 앞서 예산안이 부결되면 수일 내로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예산안 투표는 일상적인 업무에 대한 표결이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임설이 불거지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50차례 이상의 신임투표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번에는 사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총리 불신임→내각 해산→거국내각 구성→내년 1월 조기 총선의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탈리아 낭떠러지 위험"…베를루스코니 사임 초읽기
이런 가운데 이날 이탈리아의 10년만기 국채수익률은 유로 출범 이래 최고치로 급등했다. 장중 한때 6.74%까지 치솟아 7%에 바짝 다가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 국채가 '낭떠러지 위험(cliff risk)'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작은 악재에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그리스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이탈리아의 뇌관이 폭발하면 유럽 재정위기가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유로화사용 17개국) 3대 경제대국으로 국채 규모가 1조9000억유로에 이른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국채를 합친 것보다 많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그리스는 경제 규모가 작아 디폴트에 처해도 세계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탈리아에서 문제가 지속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설리/장성호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