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SC제일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이 은행의 외환 딜링룸과 부동산 투자 파트 등의 직원 수십명은 회사 측의 권유에 따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들은 이미 퇴직금 등도 다 정산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정규직 신분을 유지하되 해마다 성과에 따라 연봉을 얼마나 받을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청자 한해 연봉제 전환
리차드 힐 SC제일은행장은 올 들어 수차례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성과연봉제를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힐 행장이 추진하는 성과연봉제는 직원들의 성과를 1~5등급으로 나눠 이에 따라 성과급을 주는 것이다.
대부분 직원은 연봉제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지만 4년 연속 최하등급을 받은 소수의 직원은 최대 35%까지 임금이 깎일 수 있다. 노조는 이를 우려해 지난 7월부터 2600여명(회사 추산) 직원들과 함께 두 달간 강원도 속초에서 파업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대했다. 노 · 사 양측은 협상에 이르지 못했고 지금도 공식적으로 파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직원들이 두 달간의 파업 후 속속 영업 일선에 복귀해 사실상 유야무야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SC제일은행이 일부 직원들에 한해 연봉제 전환을 우선 실시하는 것은 노조와의 협상에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 '일보 진전'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원래도 희망 직원에 한해 연봉제 전환 시스템이 있었지만,최근 같은 상황에서 회사 측이 직원들에게 연봉제 전환을 타진하고 나선 것은 전체 성과연봉제 전환을 앞둔 포석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재율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직원,정규직이 아닌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봉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아직 회사와 협상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명예퇴직 등으로 군살빼기
SC제일은행은 최근 임원 명예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직원 명예퇴직도 준비하고 있다. 임원 12명이 지난달 말 퇴직했고,올해 중 8명이 더 퇴직할 예정이다.
또 은행 직원들을 금융지주 자회사에 재배치하는 등 조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간 은행의 소매금융본부 기업금융본부 등에서 일했던 직원 160명은 2개월간 경력 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탠다드차타드증권 · 캐피탈 · 저축은행 · 펀드서비스 등 SC금융지주 자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출 · 퇴근 시간을 다양화하는 탄력근무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힐 행장은 앞서 "고객 수요에 맞춰 주말에도 운영하는 점포를 개설하려면 탄력근무제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한국적 정서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연봉제를 도입해야만 성과가 높아진다면 다른 국내 은행들의 성과도 항상 나빠야 할 텐데,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