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선물투자에 회사자금 유용 의혹"…SK "개인 돈일 뿐"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는 8일 오전 6시30분부터 13시간 이상 이어진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하루종일 술렁였다. 임직원들이 출근하기도 전에 도착한 20여명의 검찰 수사관들은 입구에서 잠깐 실랑이를 벌인 뒤 29층과 32층에 있는 SK그룹 지주회사인 SK홀딩스 사무실로 직행했다. 압수수색에서 회계장부와 금융거래 자료 등을 대거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임직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경영진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압수수색 상황을 파악하는 등 비상 대기했다.

◆검찰,1년 만에 SK 수사 '포문'

검찰이 SK그룹에 칼을 빼들었다. 4대 그룹에 속한 기업을 압수수색한 것은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3년여 만이다. 검찰이 SK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에 들어간 건 지난 8월이지만 이미 지난해 말부터 광범위한 내사를 벌여왔다. 최 회장이 선물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지 등이 수사의 핵심이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이 보고 있는 혐의는 △베넥스인베스트먼트 투자를 통한 비자금 조성 △위장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이희완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장에 대한 뇌물 제공 등 세 가지다.

베넥스인베스트먼트는 SK그룹 상무 출신인 김준홍 씨(46)가 대표로 있는 창업투자사다. 김씨는 1998년 SK그룹에 입사해 불과 3년 만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하는 등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5월 글로웍스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SK텔레콤 등 SK그룹 계열사 18곳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총 2800억원을 투자해 거액의 손실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 투자금 가운데 수백억원이 돈세탁을 거쳐 최 회장의 선물투자에 사용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씨의 차명계좌에서 최 회장의 선물투자를 맡은 SK해운 고문 출신 무속인인 김원홍 씨(50) 계좌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다. 김씨는 검찰 수사 초기 홍콩으로 출국해 잠적해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수천억원 규모의 선물투자를 해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웍스 수사 과정에서는 최재원 부회장 소유의 수표 175억원어치가 베넥스인베스트먼트 사금고에서 발견되기도 해 최 부회장이 연루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175억원이 문제가 있는 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특수1부는 또 최 부회장이 위장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총 비자금은 수백억원에서 최대 2000억여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특수2부는 SK그룹이 이희완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이 2006년 6월 퇴직한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30억원 가량을 자문료 명목으로 제공한 혐의를 수사중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SK 수사는 한 달 안에 끝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에 대해 "(압수수색 이후 곧바로 했던) 오리온 수사 때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해 다음주쯤에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SK 뒤숭숭…"의혹은 소문일 뿐"

SK 측은 계열사 투자금 500억원 유용이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최 회장이 선물투자로 본 손해를 계열사들이 막은 일도 없고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최 부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는 "베넥스 금고에서 발견된 최 부회장 명의 수표는 자금 출처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며 "계열사의 협력업체 3곳에서 비용 과다 계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검찰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오후 4시께 전용기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지난달 30일 출국한 지 10일 만이다. 최 회장은 주요 20개국(G20) 비즈니스서밋에 참석한 뒤 유럽에 머물러 왔다. 최 회장은 경영진과 압수수색 상황을 파악하고 향후 검찰 수사 대응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검찰 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SK 관계자는 "압수수색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며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뒤 측근들과 검찰 수사 및 여론 향배를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SK 수사가 대기업을 희생양으로 삼는 국면 전환용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의혹이 검찰 수사를 통해 정리돼야할 것"이라면서도 "다른 의도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임도원/윤정현/김동욱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