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현상 불만족 기업'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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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차 성공은 긴장의 결실…건전한 위기 의식에 미래가 있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가오(花王)라는 생활용품 기업이 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고수익 기업이다. 이 회사는 올 들어 삼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지진 피해는 다른 기업과 다를 게 없지만,태국의 현지공장과 판매망이 홍수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후지TV의 주요 광고주라는 이유만으로 반(反)한류 시위대의 불매운동에 휩쓸렸다. 과연 얼마나 손실을 봤을까. 최근 이 회사의 상반기(4~9월) 실적이 나왔다. 연결영업이익 580억엔,그 충격파에도 변함 없는 수익이다.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 어떻게 이런 실적이 가능할까.
'현상 불만족 기업'이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고토 다쿠야(後藤卓也) 전 회장은 현역 시절 경영의 비결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늘 이렇게 답했다. "경영에 비책은 없다. 기본에 철저할 뿐이다. 창업정신이 기업을 지킬 뿐이다. 가오의 창업정신은 긴장이다. "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무언가 개선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가오를 창업 이래 최고 기업으로 유지해온 비책이라는 것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삼성이나 현대 · 기아자동차의 성공도 따지고 보면 끝없는 긴장의 결과다. 말이 필요없다. 최고경영자(CEO)는 행동으로 조직을 긴장시켰고,조직은 CEO의 움직임에 맞춰 늘 건전한 위기의식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왔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직후 얘기다. 정몽구 회장이 기아차 화성공장을 방문했다. 대부분 제조 공장들이 그렇듯,이 공장에도 VIP 견학코스가 있었다. 공장 관계자들은 정 회장이 당연히 이 코스를 통해 둘러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180도 빗나갔다. 정 회장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걸 누가 제지할 수 있겠나. 정 회장의 럭비공 스타일 방문이 두 차례 이어지자 공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청소부터 시작됐다. 공장 구석구석이 반들반들 윤이 나기 시작하고 작업복 차림도 깨끗해졌다. 깨끗한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진다. 기아차의 조립 품질이 급격히 향상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정 회장은 동시에 기아차 소하연구소에 테어다운(tear down)을 지시했다. 완성차에서 뜯어낸 부품을 늘어놓고 갖는 비교품평회다. 대상은 도요타 혼다 메르세데스벤츠 현대차 기아차였다. 정 회장이 자동차를 안다한들 연구원들보다 많이 알겠는가. 그래도 긴장한 연구원들은 밤잠까지 설쳐가며 준비하고 대책까지 짜냈다. 전에 없던 분위기였다. 담당 연구원이 연구소장과 함께 부품을 비교해보고 있는 정 회장에게 기아차 부품의 기능과 품질이 선진 메이커에 비해 왜 떨어지는지를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정 회장의 지시는 간단했다. "그래 그렇게 만들어 봐." 기아의 설계 품질과 새로운 디자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앨라배마공장을 방문한 정 회장이 현장에서 공장장을 해임한 적이 있다. 생산차량의 보닛을 열어보라고 했는데 보닛 후크(잠금장치)를 못 찾아 헤매자 다른 사람이 대신 열었다고 한다. 인사가 있자 외부에서조차 별 일도 아닌데 해임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며 정 회장의 인사 스타일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현대 · 기아차 모든 임직원들이 매뉴얼을 다시 꺼내놓고 자동차 '열공'에 빠져든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그의 '메기론(論)' 답게 조직의 긴장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영인이다. 애플의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서초사옥으로 출근한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남산의 개인집무실에서 회사를 원격조종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회사의 분위기는 천양지차다. 1990년대 초 '신경영'이라는 충격요법으로 세계 최고 기업을 일군 그였다. 그의 출근시간이 요즘 조금씩 빨라진다고 한다. 글로벌 재정위기가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시점이다. 위기는 늘 긴장감이 없는 내부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현상 불만족 기업'이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고토 다쿠야(後藤卓也) 전 회장은 현역 시절 경영의 비결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늘 이렇게 답했다. "경영에 비책은 없다. 기본에 철저할 뿐이다. 창업정신이 기업을 지킬 뿐이다. 가오의 창업정신은 긴장이다. "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무언가 개선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가오를 창업 이래 최고 기업으로 유지해온 비책이라는 것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삼성이나 현대 · 기아자동차의 성공도 따지고 보면 끝없는 긴장의 결과다. 말이 필요없다. 최고경영자(CEO)는 행동으로 조직을 긴장시켰고,조직은 CEO의 움직임에 맞춰 늘 건전한 위기의식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왔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직후 얘기다. 정몽구 회장이 기아차 화성공장을 방문했다. 대부분 제조 공장들이 그렇듯,이 공장에도 VIP 견학코스가 있었다. 공장 관계자들은 정 회장이 당연히 이 코스를 통해 둘러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180도 빗나갔다. 정 회장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걸 누가 제지할 수 있겠나. 정 회장의 럭비공 스타일 방문이 두 차례 이어지자 공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청소부터 시작됐다. 공장 구석구석이 반들반들 윤이 나기 시작하고 작업복 차림도 깨끗해졌다. 깨끗한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진다. 기아차의 조립 품질이 급격히 향상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정 회장은 동시에 기아차 소하연구소에 테어다운(tear down)을 지시했다. 완성차에서 뜯어낸 부품을 늘어놓고 갖는 비교품평회다. 대상은 도요타 혼다 메르세데스벤츠 현대차 기아차였다. 정 회장이 자동차를 안다한들 연구원들보다 많이 알겠는가. 그래도 긴장한 연구원들은 밤잠까지 설쳐가며 준비하고 대책까지 짜냈다. 전에 없던 분위기였다. 담당 연구원이 연구소장과 함께 부품을 비교해보고 있는 정 회장에게 기아차 부품의 기능과 품질이 선진 메이커에 비해 왜 떨어지는지를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정 회장의 지시는 간단했다. "그래 그렇게 만들어 봐." 기아의 설계 품질과 새로운 디자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앨라배마공장을 방문한 정 회장이 현장에서 공장장을 해임한 적이 있다. 생산차량의 보닛을 열어보라고 했는데 보닛 후크(잠금장치)를 못 찾아 헤매자 다른 사람이 대신 열었다고 한다. 인사가 있자 외부에서조차 별 일도 아닌데 해임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며 정 회장의 인사 스타일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현대 · 기아차 모든 임직원들이 매뉴얼을 다시 꺼내놓고 자동차 '열공'에 빠져든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그의 '메기론(論)' 답게 조직의 긴장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영인이다. 애플의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서초사옥으로 출근한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남산의 개인집무실에서 회사를 원격조종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회사의 분위기는 천양지차다. 1990년대 초 '신경영'이라는 충격요법으로 세계 최고 기업을 일군 그였다. 그의 출근시간이 요즘 조금씩 빨라진다고 한다. 글로벌 재정위기가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시점이다. 위기는 늘 긴장감이 없는 내부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