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重 분규 타결…정치권 압박에 결국 백기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11개월 가까이 갈등을 빚어온 한진중공업 사태가 타결됐다. 결국 일감도 없는 상황에서 사측이 국회권고안에다 고소고발 취하까지 더해 받아들였다. 크레인 불법점거 등을 통해 사측을 압박하면서 밀어붙인 노조 의견이 많이 수용된 셈이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9일 국회권고안을 바탕으로 주요 쟁점에 대해 막판 절충을 벌여 합의를 도출했다. 노조는 이날 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쳤으나 크레인 농성을 해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검거하려던 경찰과 한때 대립하면서 조합원들의 합의안 수용은 10일 오후 조합원 총회로 미뤄졌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지난달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 수용 여부를 두고 노조 지회장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노사 협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노조가 추가로 요구안을 제시하고 사측은 이에 난색을 표하면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다 이날 합의점을 찾았다.

합의된 주요 내용은 세 가지다. 국회 권고안에다 양측의 소송 취하 등이 추가됐다. 노사 합의에 따르면 우선 회사는 해고자 94명에 대해 당초 국회 환노위 권고안대로 노사가 합의한 날로부터 1년 내에 재고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해고자들은 내년 11월께 영도조선소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조남호 회장이 국회에서 약속했던 해고자 생활지원금 2000만원도 1000만원을 먼저 지급하고 나머지는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지급하기로 했다. 이 같은 합의사항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소송과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취소한 사람에게 적용하기로 했다.

노사는 또 서로를 상대로 냈던 형사 고소고발 등은 모두 취하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소송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11개월째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 대해서도 회사 측이 낸 고소고발건을 취소하고,다른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에 선처를 호소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박종준 경찰청 차장은 9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씨에 대해 건조물 침입 혐의 등이 적용돼 체포 영장이 발부돼 있다"며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체포영장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인근의 한 주민은 "불법점거해 밀어붙이면 다수 시민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관계없이 노조 측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엄정한 법 적용으로 다시는 불법점거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사법당국에 요청했다.

이날 노사의 전격 합의는 수주받은 일감이 이달 말이면 없어져 조속한 회사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회사 측이 결국 환노위 안을 수용,노조와 협상 타결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노조 측도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 4일 한진중공업 노조가 회사 측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제출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자 노조 힘만으로 정리해고문제를 법적으로 뒤집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편 한진중공업은 오는 14일께 실시키로 한 휴업은 당초 계획대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재용 사장은 "이달 말로 일감이 동나는 만큼 1400여명의 임직원과 2000여명 협력업체의 생존을 위해 일감을 확보하고 휴업을 최대한 빨리 단축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