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W 선고' 앞두고 불면증 시달리는 CEO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거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 현직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12명에 대한 1심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서울 여의도 증권가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회사로서는 CEO가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대외이미지가 추락할 것을 우려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사자들은 더 심하다. 외부접촉을 꺼리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ELW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12명의 전 · 현직 대표 중 상대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은 D증권사의 N사장이다. 네 개로 나뉘어 진행되는 재판부 중 재판속도가 가장 빨라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어서다. 검찰은 지난 4일 N사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검찰로서는 가장 낮은 수준의 구형"이라고 해석했지만 D증권사와 N사장은 물론 다른 증권사도 큰 충격에 빠졌다. 검찰 구형은 단순히 '구형'일 뿐인데도 일부에서는 '선고'로 인식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D증권사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담당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형두 부장판사)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재판을 병행하고 있어 다른 재판부보다 심리가 더딜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집중심리를 통해 구형까지 끝내고 오는 28일 선고를 내릴 예정이어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삼성 대우 현대 우리투자 등 대형 증권사 CEO들이 안도하는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심리가 시작되면서 재판정을 가야 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이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언론의 카메라 세례다. 재판정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언론 경험이 풍부한 대형 A증권사 사장은 선고 공판 세 시간 전인 오전 7시에 재판정에 들어가 취재진을 따돌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행여 취재진에 노출될까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물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반면 이런 상황을 잘 몰랐던 B증권사 사장은 재판이 시작될 무렵 출두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방송뉴스 자료화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노하우를 전수받은 C증권사 사장도 재판 시작 세 시간 전인 오전 7시 재판정으로 직행했다. 재판정 문도 열지 않은 시간이라 직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비밀의 장소'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렸다. 하지만 법원 직원으로부터 "이곳은 구속된 피고인들의 대기 장소"라는 말을 들으며 쫓겨나야 했다.

증권사 CEO들은 개인 생활에도 상당한 지장을 받고 있다. D증권사 사장은 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그는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눈을 뜨면 새벽 2시인 날이 많다"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E증권사 사장은 "업무적으로 꼭 만날 사람이 아니면 친구들조차 만나는 걸 피하고 있다"며 "괜히 이러쿵저러쿵 도마에 오르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더욱 심란하게 하는 것은 '조기 퇴진설'이다.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고 이상의 확정 판결을 받으면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확정 판결은 대법원 판결이나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경우"라고 설명했다. 1심 판결과 대표직 수행은 무관하다는 의미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