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맥스 화장품 '명품' 반열에…30조 中시장 '정조준'
지난 9월 말 화장품 제조 전문업체인 코스맥스에 생각지도 못한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글로벌 화장품 1위 업체인 프랑스 L사의 브랜드 매니저 등 마케팅 임직원 30여명이 한꺼번에 경기도 화성공장을 찾은 것.이들이 공장을 ‘급습’한 까닭은 코스맥스가 개발한 화장품 128종을 살펴보고 상품화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서였다.이틀에 걸쳐 까다롭게 품평회를 가진 L사는 코스맥스의 34개 제품에 대해 최고 품질 등급인 ‘3등급’을 부여했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65)은 “국내 화장품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고 말했다.L사의 6개국 브랜드 매니저들이 한꺼번에 특정 회사를 찾은 것도 전례가 없거니와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에서 품평회를 가진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이 회장은 “한국은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수입 의존국이자 변방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큰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4일에 1개씩’ 신제품 내놓는 글로벌 경쟁력

코스맥스는 화장품 회사다.1992년 서울 포이동 10평 남짓 사무실에서 직원 3명으로 출발했다.12일로 창립 19주년을 맞는다.그러나 이 회사 이름을 알고 있는 소비자는 별로 없다.자체 브랜드가 없는 탓이다.

코스맥스는 개발한 제품을 유명 브랜드를 갖고 있는 유수의 화장품 회사에 판다.그렇다고 단순 하도급업체는 아니다.직접 연구·개발(R&D)한 제품을 팔기 때문이다.고객이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화장품 회사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국내 화장품 가게나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유명 브랜드 화장품 4개 중 1개에는 ‘제조원 코스맥스’가 찍혀 있다.이 같은 ODM(제조자 개발 생산) 방식으로 코스맥스가 올해 생산한 화장품은 1억개에 이른다.국내 화장품 사용 인구가 2000만명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수출 물량(15%)을 제외하고도 1인당 평균 4.25개 정도의 코스맥스 제품을 썼다는 얘기다.

이 회사가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른 것은 외환위기 직후였다.중국 화장품전문점 판매 1위인 자연당(CHCEPO)과 거래를 트면서 매출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중국 화장품 수요가 폭발하면서 2007년부터는 매출이 해마다 20% 이상 커졌다.

현재 국내 화장품업체 125곳,해외업체 25곳에 ODM이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올해 연결 매출은 지난해(1925억원) 대비 25% 많은 2400억원으로 잡고 있다.코스맥스는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ODM 사업에서 나온다.단순 OEM에 치중하는 국내 경쟁사들에 비해 수익성이 높은 이유다.

코스맥스는 세계 1위 생활용품업체인 존슨앤드존슨의 10대 화장품 공급업체 가운데 하나다. 또 세계적인 화장품업체 로레알에 공급하는 ‘젤 아이라이너’는 지난 4년간 전 세계적으로 1600만개가 팔려 ‘빅히트 상품’ 대열에 올랐다.이 제품은 지난해 일본에서만 300만개 이상 팔리는 등 공전의 히트를 쳤다.품질력을 인정받으면서 로레알이 인수한 일본의 슈에무라와 미국업체 메이블린, 미국 10위권 화장품업체인 메리케이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덕분에 코스맥스는 지난해 국내 화장품 ODM업체로는 최초로 2000만달러 수출탑을 탔다.

코스맥스는 연간 1500개 정도의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연구원이 전 직원(360여명)의 22%(80여명)에 이를 정도로 제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덕분이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유명 화장품업체들이 코스맥스를 제조사로 선택하는 이유는 신제품 샘플을 만들어 내는데 다른 회사들이 6개월 걸리는 데 비해 코스맥스는 3개월이면 충분할 정도로 R&D가 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0조원 중국시장을 이끈다”

코스맥스의 성장 전략은 글로벌화다.2008년부터 프랑스 파리박람회에 참가, 유럽업체에 기술력을 알리고 있다.특히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국가에 마케팅력을 집중하고 있다.

2004년 중국 상하이에 세운 코스맥스차이나는 연평균 50%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지난해 250억원,올해 4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객회사도 자연당 등 90여곳에 이른다.상하이 공장은 지난 8월 설비를 대폭 확충, 연간 8000만개에서 1억개의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췄다.내년 상반기엔 3000만개 생산능력을 추가한다. 또 내년 하반기엔 광저우에 연산 4000만개 생산능력을 갖춘 새 공장이 완공된다.

코스맥스는 상하이 광저우 외에 베이징 충칭 등지에 생산기지를 건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이 회장은 “국내 화장품 시장이 8조원 수준인데 중국은 올해 27조원,수년 내에 30조원 시장으로 커질 것”이라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타고 있는 중국시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5년 내에 중국 매출이 국내 매출을 추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랜드도 없이…그래도 우리는 명품이다”

이 회장은 유독 ‘3’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다. 19년 전 직원 3명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3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공장을 지었다. 해마다 해외출장 건수도 30회를 넘겨왔다. 그만큼 전 세계를 무대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 회장이 제시하는 성장동력은 크게 세 가지다. 한류(韓流)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수출에 집중하며 유럽 회사와 경쟁할 수 있는 럭셔리 브랜드를 만드는 것. 이 세 가지를 지키면 매출은 3년 내 3배로 증가한다는 것이 그의 ‘3·3·3 전략’이다.

이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최근 코스맥스의 캐치프레이즈를 ‘우리는 명품이다’로 정했다.국내 휴대폰, 자동차,정보기술(IT) 제품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것에 항상 부러움을 느껴왔지만 이제 화장품도 ‘명품군(群)’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을 반영한 ‘선언적’ 의미였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요즘 명품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핵심은 임직원들의 마인드 컨트롤이다.‘우리가 만드는 것이 명품이고 우리 스스로가 명품이 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는 마음가짐’이 이 회장이 내세우는 명품 경영방식이다.

코스맥스는 코스맥스차이나를 비롯해 제약업체 일진제약,생활용품업체 쓰리에이팜,화장품 용기업체 쓰리에이씨,물류업체 TSM,해외마케팅업체 쓰리에이지 등 5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 회장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먹고 바르는 산업에서 전 세계인을 만족시키는 글로벌 명품 ODM 기업으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