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소니, 창업자 타계후 경영위기 왔다는데…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타계한 이후 애플의 미래에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잡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만큼 애플이 그의 공백을 극복하고 스마트폰 시장의 최강자 자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일부에서는 잡스가 이미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는데도 애플이 CEO 승계 계획을 세우지 않아 잡스 이후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애플의 모습은 성공적인 CEO 승계가 기업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글로벌 기업도 CEO 승계에 실패해 몰락한 사례가 적지 않다. 월트디즈니는 창업자인 디즈니가 1966년 별세한 이후 경영 위기를 맞아 정상화에 20여년이 걸렸고, 소니 역시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가 1999년 타계한 뒤로는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CEO 승계는 한국 기업에도 중요한 경영 현안이다.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60~70대의 고령에 이르렀고, 중소기업 경영자의 평균 연령도 높아져 세대 교체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성공적인 CEO 승계를 위해 기업은 우수 인재를 조기에 선발해 미래의 경영자로 육성해야 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 IBM 지멘스 등은 우수 인재를 빨리 승진시키는 초고속 승진제도(fast track)를 운영한다. 이들 기업에서 업무 성과와 잠재 역량을 평가받은 직원은 초고속 승진제도를 통해 30대 후반에 임원이 되고, 40대 중반에 CEO가 될 수 있다. 40대 후반에야 임원이 되고 50대 중반이 돼서야 CEO가 되는 한국 대기업과 대비된다.

CEO 후보군에게는 다양한 직무 경험 기회를 주고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GE는 연간 70명의 핵심 인재를 선발해 여러 사업부에서 현장 연수를 받게 하고, 18개월 이상 해외에서 근무하도록 한다. CEO 후보군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역량 개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인텔은 현직 CEO가 후보자를 대상으로 OJT(On the Job Training)를 실시해 CEO가 갖춰야 할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한다. CEO 후보자에게 경영 현안에 관한 과제를 부여해 스스로 전략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CEO 승계 프로그램에는 글로벌 역량을 배양하는 과정이 포함돼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CEO 후보자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한다. 해외 사업에 필요한 어학 능력은 물론 다문화 수용능력과 국제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다.

CEO 승계 프로그램은 기업의 경영이념과 가치를 계승하기 위한 과정일 뿐 아니라 CEO의 사망 등 갑작스러운 경영 공백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수단도 된다.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우수 인재를 조기에 선발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예비 경영자를 길러내야 한다.

배성오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ongo.bae@sams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