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산업단지 SK엔테크노파크에 하이레벤이라는 업체가 있다. 이 회사는 창업한 지 3년 만에 삼성 LG SK 등 50여곳에 납품했거나 계약을 추진 중이다. 태양광발전의 효율을 올려주는 세정·냉각장치를 만드는 업체다. 일부 태양광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가 성장가도를 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더위가 한풀 꺾인 2009년 9월 서울 경복궁 옆 배화여대 창업보육센터. 새벽 4시쯤 됐을까. 인적이 끊긴 이곳에 작업복 차림의 한 젊은이가 담을 넘고 있었다. 손에는 무엇인가를 담은 자루가 들려있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우유 배달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그를 비췄다. 영락없는 도둑의 몰골이었다.

유상필 하이레벤 대표였다. 당시 33세였던 그 젊은이는 왜 새벽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월담을 해야 했을까. 서울 북촌에서 태어난 유 대표는 고교 2학년 때 KAIST에 합격해 조기 진학했다. 이곳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기전공학)를 땄다. 대덕에 있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7년간 근무한 그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 1년간 방문연구원으로 갈 기회가 있었다.

맨해튼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뮤지컬극장 패션상점 금융회사 등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새로운 아이템으로 창업하는 젊은 벤처기업인들과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기술이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는 게 미국이었다. 자신도 창업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2008년 귀국하자 마침 태양광이 화두로 떠올랐다. 무릎을 쳤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분야가 태양광인데 붐이 일 조짐이 보였던 것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사표를 던졌다. 동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창업을 하겠다며 사표를 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너지는 엄청난 투자를 수반하는 분야다. 따라서 연구원 중 누구도 창업을 통해 이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배화여대 창업보육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직원은 고작 3명이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직접 세운상가에 가서 원·부자재를 샀다. 차비를 아끼려 세운상가를 향해 걸어갈 때는 늘 자신이 태어나 곳을 지나갔다. 코끝이 시큰해오는 것을 느꼈다.

KAIST 박사 출신에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잘나가던 시절과는 달리 창업을 하니 누구도 월급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벌어서 직원들 월급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장비를 개발해 설치할 때는 산비탈 뙤약볕 아래서 직접 삽질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잡아보는 삽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옷은 흙투성이였다.

태양광 발전 효율향상시스템인 썬업(SUNUP)을 개발해 처음 납품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특허와 수상 경력은 있었지만 납품 실적이 없었다. 누구도 선뜻 구매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업체에 처음 납품할 때는 무조건 한번 써달라며 무상으로 줬다. 그런 뒤 효과를 보자 이 회사는 1억원어치를 주문했다. 첫 주문을 받은 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초창기 어려움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2009년 9월 코엑스에서 제품을 전시할 때의 일이다. 작동이 잘 되던 썬업이 코엑스 부스에 설치하자 돌아가질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 전시회가 개막하면 국무총리가 테이프커팅을 한 뒤 이동경로를 따라 하이레벤을 방문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전날 저녁이 되도록 제품이 작동되질 않았다. 그는 전시하려던 제품의 부품을 분해해 창업보육센터로 갖고 돌아왔다. 밤새 점검해도 이상이 없었다. 새벽이 돼서야 원인을 찾아냈다. 전시장의 전압이 낮았던 것이다. 변압기를 설치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부품을 분해해 달려온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새벽 4시쯤 학교 밖으로 나가려니 이제는 문이 닫혀 나갈 길이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담을 넘었고 도둑으로 오인받는 소동까지 벌어진 것이다.

태양광발전의 핵심은 태양전지다. 태양빛을 받아들이는 태양전지에 먼지가 쌓이거나 눈이 덮이면 발전효율이 떨어진다. 태양전지를 구성하는 실리콘반도체는 온도가 올라가면 발전효율이 낮아진다.

배화여대에서 성남으로 이전한 하이레벤은 바로 이런 부분을 관리해주는 업체다. 이를 통해 발전효율을 높여주는 태양광발전 ‘BOS(balance of system)’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가 설립된 것은 2008년 5월. 불과 3년여 된 신생 벤처다. 하지만 회사는 설립 첫해인 2008년 지식경제부 주최 친환경 전기에너지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대한민국 기술대상 은상을 받았다. 신기술인증(NET) 마크도 획득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려온 태양광발전소의 관리 실태를 파악한 뒤 ‘태양광발전 효율 향상 장치’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마치 자동차 앞유리가 더러워지면 세척액을 뿌리고 와이퍼로 닦듯이 태양광전지의 표면에 먼지가 쌓이거나 때가 끼면 이를 닦아준다.

여름철 태양전지는 온도가 60~70도까지 상승한다. 유 대표는 “25도 이상에선 1도 상승할 때마다 발전효율이 0.5%씩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냉각시켜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썬업은 태양전지 모듈을 냉각·세정해 주는 것만으로 순간 발전효율을 최대 20%가량 높여준다”고 말했다. 특히 시간과 온도 등의 조건에 따라 모든 동작이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시스템화했다. 배관을 땅속에 매설해 동파 위험도 없앴다. 이런 장점에 힘입어 3년 만에 삼성에버랜드 김천태양광발전소, LG태안 태양광발전소, SK 태양광발전소 등 50여곳에 이를 설치했거나 공급을 추진중이다. 이를 찾는 기업도 점점 늘고 있다. 각종 대회 수상 경력과 특허 출원에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에 대한 납품으로 그 성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안에는 태양광 발전장치와 이를 세정·냉각해 주는 장치인 썬업이 설치돼 있다. 그 옆 개발실에선 수시로 이를 통해 발전장치를 세정하고 냉각시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 회사 종업원은 모두 15명. 주로 기계나 전기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30세 전후의 젊은이들로 서울대 아주대 홍익대 출신이 포진해있다. 이들은 에너지 벤처 분야에서 일류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갖고 뛰고 있다.

유 대표는 “지난 3년간이 준비기였다면 앞으로는 도약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적으로는 이 분야 최고의 강소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하이레벤은 독일어로 하이라이프라는 의미다. ‘삶의 질 향상’, 혹은 ‘고급스러운 삶’이라는 의미다. 공해 없고 무한한 신재생에너지인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이 늘어나면 인간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하이레벤은 삶의 질을 높이는 귀중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