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쌓인 오솔길 따라…징검다리 사뿐히 건너…가을 숲길 거닐어볼까
"아이고,조금만 빨리 오지 그랬습니까. 단풍이 한창일 때 오셨으면 오대천과 오대산의 단풍이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요. "

월정사의 지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 아차,싶었다. '오대산 옛길' 이야기다. 옛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차도가 생기기 전에 걸어다니던 길을 복원한 것인데 단풍이 다 져서 지금 가면 아쉬울 거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왕 마음 먹은 김에 가보기로 했다. 월정사를 나서서 포장된 차도를 따라 걷자니 당최 맛이 나질 않는다. 그나마 월정사 입구부터 감탄사를 자아내던 전나무 숲길이 포장도로에도 이어진다는 게 위안이랄까.

◆오대천 따라 걷는 20리 옛길

낙엽 쌓인 오솔길 따라…징검다리 사뿐히 건너…가을 숲길 거닐어볼까
동대 관음암으로 오르는 길목과 월정사 부도군을 지나 월정사로부터 1㎞쯤 걸었을까. 반야교를 건너자 비포장길로 바뀌면서 길 왼편에 높다랗게 나무울타리를 쳐놓은 게 눈에 띈다. 월정사가 불사에 쓸 목재를 대기 위해 운영하는 제재소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목재회사가 있던 곳이라 지금도 이곳을 '회사거리'라고 부른다.

길 오른편에 '오대산 옛길'로 안내하는 팻말이 눈에 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약 9.4㎞.이미 1㎞ 남짓 걸어왔으므로 여기서 상원사까지의 옛길은 8㎞.3시간이면 걸을 수 있는 거리다. 옛길은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로 시작한다. 물은 어찌 이다지도 맑은지….고개를 들어 산을 보니 단풍은 졌어도 산을 누렇게 물들인 활엽수들의 원경이 마치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징검다리를 건너자 곧장 오대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오솔길이다. 나뭇잎은 낙엽으로 다 졌지만 덕분에 길은 양탄자를 밟는 듯 푹신푹신하다.

◆화전민 흔적 따라 섶다리 추억 따라

잠시 길을 걷다 보니 옛 화전민 집터가 나온다. 집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돌담과 1960년대 말 화전을 정리하고 화전민을 이주시킬 때 세운 '화전 금지' 시멘트 표지석이 옛날일을 어림하게 한다. 당시 옛길 주변에는 360여가구의 화전민이 살았다고 한다.

배추밭을 지나자 길은 오대천으로 내려간다. 오대천에 깔린 돌을 밟고 가는 길인데 곧 또 하나의 징검다리로 안내한다. 징검다리를 건너자 '보메기'라는 팻말이 서 있다. 예전에 오대산에서 벌목한 나무들을 모아두던 곳인데 보를 쌓고 오대천 계곡물은 가둬뒀다가 보를 한꺼번에 터뜨리면서 목재를 하류로 흘려보낸 데서 보메기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

때론 크고작은 돌을 밟고 계곡을 거슬러 오르자니 통나무를 걸쳐놓은 다리가 나오고 다시 오솔길로 이이진다. 보메기에서 1.2㎞를 걷자 이번에는 섶다리가 오대천 양편을 연결하고 있다. 목재 수송을 위해 일본인들이 놓았다는 협궤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세조의 설화 얽힌 상원사

옛길을 다 걷고 나서 상원사에 올라가는 건 덤이다. 상원사에는 세조와 관련한 이야기가 여럿 전해져 온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오대천에서 몸을 씻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어린 동자로 현신해 세조의 등을 씻어주었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상원사에 오르니 공양간 앞마당에선 김장이 한창인데 문수전 앞에는 불사가 한창이다. 국보 제36호인 상원사 동종을 옮길 누각을 짓는 공사인데,전각 안에 갇혀 있던 동종은 현재 새로 지은 종각으로 옮겨 공개하고 있다.

문수전 앞에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 석상 또한 세조와 관련이 있다. 어느날 세조가 기도하러 문수전에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가 옷자락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괴이하게 여긴 세조가 법당을 수색하게 하자 불단 밑에 숨어 있던 자객이 발각됐다. 이 자객이 최근 방영됐던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나온 그 자객은 아니었을까. 화를 면한 세조는 고양이에게 보은의 전답을 내렸다. 이를 묘전(猫田)이라 했는데 지금도 강릉 지방에 상원사 소유로 된 묘전의 일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


◆ 여행 팁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부요금소에서 빠지면 월정사로 갈 수 있다.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있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행 버스를 타면 2시간30분 정도 걸리는데 진부에서 월정사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

오대산 옛길은 오대천을 여러 차례 건너고 오대천 바닥의 돌과 너럭바위를 지나서 가야 하므로 오대천이 얼어붙는 겨울철이나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났을 땐 주의해야 한다. 월정사 아래에는 산채정식,산채비빔밥 등을 파는 식당들이 많은데 대체로 맛은 비슷하다. 대관령면 횡계리 황태회관(033-335-5795)의 황태해장국,황태찜 등이 유명하다. 월정사에서 30~40분 거리의 주문진어시장에 가면 제철을 맞은 양미리,도루묵,산오징어 등을 싸게 즐길 수 있다. 어시장 한쪽에서 파는 생선모둠구이도 권할 만하다.


평창=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