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여전사' 박지은 9단 "싸움바둑은 나의 힘…재테크는 초보죠"
"우승 상금요? 세금 떼고 전부 달러통장에 넣었습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아무래도 재테크에도 관심을 갖게 되네요. "

지난달 13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궁륭산 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를 2연패한 박지은 9단(28 · 사진)을 11일 서울 홍익대 앞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요즘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박 9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여자 프로기사다. 올 들어 33승15패로 다승부문 1위,승률(68.75%) 1위를 달리고 있다. 다음달에는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하고 동아제약이 후원하는 제17기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 4강전에 나선다.

14세에 프로에 입단한 박 9단을 가리키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25세에 여류 최초로 입신의 경지인 9단 승단,세계대회 우승 5회,첫 여류 국가대표,반상의 여왕 등이 그에게 따라다니는 말이다. 여류 최고의 싸움바둑으로 '여전사'로도 통한다. 그의 바둑여정을 관통하는 말은 한마디로 '호기심과 과감한 도전'이다.

"제 나이가 바둑 나이로 치면 한 50대쯤 됩니다. 그만큼 체력소모가 많다는 뜻이죠.그러니 자연 노후준비에도 신경이 쓰입니다. " 그가 최근 재테크에 재미를 붙인 배경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 우승상금(20만위안 · 3600만원)을 달러로 받았습니다. 요즘 환율이 불안정한 거 같아 달러통장을 처음으로 만들었어요. "

옆에서 특별히 '돈 관리'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 관련 책부터 사서 봤다. "미국의 전설적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가 쓴 《월가의 영웅》 같은 투자지침서를 여러 권 사서 읽었어요. 제일 먼저 배운 게 분산투자예요. 수입의 대부분은 현금통장 3개와 자산관리계좌(CMA),펀드,변액보험에 넣어둡니다. 요즘엔 주식에도 투자합니다. 재미도 있고 해서 가능한 한 직접 해보려고 합니다. "

정상급 여자 프로기사이지만 수입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수입은 7000만~8000만원 정도라고 귀띔한다.

박 9단은 평생의 업인 바둑조차 누가 권해서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게 불과 10살 때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피아노,미술,수학학원을 다니고 학습지도 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과가 너무 싫었습니다. " 그러던 차에 집에서 아빠(아마 1급 수준)가 바둑 두는 모습을 보다 재미있겠다 싶어 바둑학원을 다니겠다고 졸랐다. 그렇게 시작한 바둑이 오늘의 박지은을 만들었다.

그는 '중2 자퇴' 학력이 전부다. 하지만 박 9단은 한 번도 그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중학교에 진학한 첫날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남들은 중학생이 됐다고 들떠있을 때 바둑공부를 하겠다고 아빠와 함께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휴학계를 냈어요. 그런데 1년 이상은 휴학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듬해 바로 자퇴했죠."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바둑공부에 전념해 그해 11월 당당히 프로 초단에 이름을 올렸다. 만 14살 때였다.

"학교공부가 부족하긴 하지만 다행히 '바둑'을 빨리 만나 내 길을 찾을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어려서부터 본인이 좋아하는 게 있으면 과감하게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바둑에 관심있는 동생들에게 주는 '바둑퀸'의 조언이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