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즐겨 찾는다는 맛집 '돈후이'는 가깝지 않은 곳에 있었다. 퇴근 시간과 겹쳐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차로 1시간30분이 꼬박 걸렸다. 방도 따로 없었다. 서민들과 한데 어울릴 수 있는 평범한 삼겹살집이었다. 식당 안은 시끌벅적해 옆 사람 얘기도 잘 들리지 않았다. 테이블엔 소주와 콜라,그리고 얼음이 담긴 통이 보였다. 강 회장은 맥주 잔에 얼음부터 채워 넣었다.

"내가 오면 늘 이렇게 달라고 합니다. 소주는 자기 실력만큼 넣고 다이어트콜라를 부으면 됩니다. 이게 술도 덜 취하고 좋습니다. 다른 삽겹살집보다 훨씬 맛있을 겁니다. 지글지글 구워먹는 게 아니고 여기선 대나무통에서 한 번 굽고 기름을 뺀 걸 다시 구워 먹는 거니까. 내가 야인 시절에 다닐 곳도 없고,누가 술 한잔 하자고 하면 여기서 보자고 했습니다. 어서 들어들 봐요. 맛이 좋으니까. "

1998년 재정경제부 차관에서 물러나 10년 가까운 야행생활에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즐겨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가 예전에 쓰던 개인 사무실 옆이다. 소주와 콜라,그리고 기름기가 빠진 삼겹살의 조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강 회장과의 인터뷰 약속은 두 달 전에 잡아 놓았다. 그 사이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겪었다. 지난 10월8일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뭐든 물어봐야 하는 게 기자의 일이다. '그 일까지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의 부음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고,장례도 조촐하게 치른 그였다. 조심스럽게 근황을 물었다.

"요즘 내가 학부형 노릇을 하느라고 저녁 약속도 특별한 거 아니면 안합니다. 손녀가 자꾸 빨리 오라고 하니까. 오늘도 그래.오늘이 내 딸이 천국에 간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

강 회장은 세상을 떠난 딸의 부탁으로 손녀를 맡아 키우고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떻게 지냈을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물어보면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강 회장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내가 딸을 관에 넣으면서 집사람하고 가족들 다 나가라고 한 다음에 꼭 안아줬습니다. 그러고는 '니(네)가 내(나)를 관에 넣어야 하는데 내가 니를 관에 넣게 됐구나. 이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

강 회장은 딸의 비석에 새긴 비문을 직접 지었다고 했다. 휴대폰을 꺼내 비석 사진을 보여줬다. "시(詩)와 함께 세상에 와서/…."

그는 비문을 죽 읽어내려갔다. 얼굴에 표정 변화는 없었다. "딸이 태어났을 때 내가 워싱턴에 있었는데 그때 시를 지어 보냈습니다. 비석 앞에 혼자 앉아 '니가 애비 비문을 짓고 해야 하는데,애비가 딸의 비문을 지어야 하는 일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

식당 안은 사람들로 여전히 시끄러웠다. 강 회장이 앉은 테이블은 한없이 숙연해졌다. 딸이 더욱 그리워서일까. 강 회장은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봤다. 다른 사진과 동영상까지 보라고 했다. 강 회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사진을 직접 찍었습니다. 딸하고 아빠는 특별한 관계잖습니까. 이게 우리 딸 모습입니다. 가발이에요. 항암 치료 3년 하는 동안 머리카락이 다 없어졌으니까. 마직막 영정 사진으로 쓰려고 가발을….얼굴을 보면 전혀 환자 같지가 않지.여긴 우리 손녑니다. (휴대폰에선 가족 예배와 장례식 모습이 흘러나왔다. )5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손녀가 컸을 때 보여주려고."

테이블 건너편에서는 40여명쯤 돼 보이는 직장인들의 박수 소리와 건배 제의가 시끄럽게 이어졌다. '강동지사를 위하여'라는 큰 건배 구호를 외쳤다. 회식 자리를 정리하는 마지막 건배사였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중단됐다.

강 회장은 "한국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아직도 부족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시끄럽게 하면 옆사람들이 제지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방치합니다. "

자리를 마치고 일어선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다가와 깍듯한 자세로 강 회장에게 수첩을 내밀었다. "존경합니다 부총리님.시끄럽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과거엔 부총리급이었다는 걸 알고 있던 것 같다. )'팬'들의 사인 공세에 강 회장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식당 안도 조용해졌다.

정부에서 큰 그림을 그리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로 가니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물었다. "전체를 다루는 일을 하면 직접적인 성과가 안 보일 때가 많습니다. 산은에서는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들,예를 들면 학업 · 취업 병행 시스템 마련이나 고졸 및 지방대학 출신 채용 확대 같은 일을 합니다. 성과가 눈에 보입니다. 은행 비용을 줄여서 고객에게 금리를 더 주는 일도 할 수 있고.옛날엔 이론만 얘기했던 거니까. "

지난 3월 강 회장이 취임한 뒤 산은금융지주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이제 우리는 슈퍼갑(甲)이 아니라 슈퍼을(乙)이라고 직원들에게 얘기했다"며 "직원들의 서비스 정신이 특히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소매금융 확대를 위해 시작한 다이렉트뱅킹 신청자 수는 이미 5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객을 직접 찾아가 실명을 확인하는 전담 직원도 10명에서 40명으로 늘렸다.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업무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40명은 특성화 고등학교 출신 또는 졸업예정자들로 채용했다.

강 회장은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 수첩에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요즘도 새벽에 잠이 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한다. 그가 보여준 수첩엔 파란색 사인펜으로 깨알같이 적어놓은 아이디어와 일정들이 빼곡했다.

산업은행장,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산업은행은 1906년 구한말에 인베스트먼트 뱅크로 인가받은 은행입니다. 지금 국내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해외로 뻗어나가는 데 파이오니어 역할을 해야 합니다. "

산은이 1조원 규모의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마련해 기업 지원에 나선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갈 때 인수 · 합병(M&A) 정보를 제공하고 금융도 주선하는 등 지원을 다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강 회장은 올해 좌절도 맛봤다. 산은지주가 추진했던 우리금융지주 인수전 참여가 무산됐다.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M&A 계획에 대해서는 "다시 기회가 오면 잡을 것이고,기회가 오지 않으면 다른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탄생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기획재정부 장관,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대통령 특보 등을 지낸 'MB정부의 사람'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과를 함께 짊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747공약(7% 성장,4만달러 국민소득,7대 강국 도약)을 폐기하고 감세 노선에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강 회장은 "(내가 추진했던) 정책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겠지요"라며 '정책'과 '정치'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답을 했다.


■ "20년간 새벽 테니스…요즘도 드라이버 280야드 너끈"

"정책이 정치를 따라가면 안 되고,정치가 정책을 따라오는 것도 어렵고,정답은 없습니다. 올바른 정책이란 것이 여론과 다를 수도 있고,경우에 따라서는 여론과 반대로 갈 수도 있잖습니까. 여론의 흐름을 탈 수밖에 없는 정치와 정책이 상치될 때 국민이 현명하게 판단을 해줘야 합니다. "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여론과 그 결과를 직접 봐왔다는 그는 "정책이 시행될 당시 인기 있던 정책은 지금 와서 보면 좋은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정책도 돈만 있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그러면 나라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를 '고집이 세다'고 말한다. 경제관료 가운데 호불호(好不好)가 강 회장만큼 분명한 이도 거의 없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도 뚜렷하게 갈린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하니까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 대합니다. 국회 본회의 답변에서도 틀린 얘기가 나오면 바로 틀렸다고 말합니다. 틀렸다고 얘기하면 그 사람은 날 싫어하고,맞다고 하면 좋아하고 그런 겁니다. 내가 그러니 그 사람도 그러는 겁니다. "

주제가 자연스럽게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로 옮겨갔다. 그는 비준 문제는 길게 끌 일이 아니라고 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토론은 있어야 합니다. 서로 다 옳은 얘기라고 주장해서 토론하고,그래도 설득이 안 되면 그때는 표결을 해야죠.민주주의에서 '49 대 51'이 제일 아름답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은 서로 납득이 안 되는 게 아니고 (표) 계산이 맞지 않은 겁니다. "

불판에 남은 삼겹살이 타들어갈 때쯤 잘게 썬 김치가 곁들여진 국수가 식사로 나왔다. 너무 무거운 얘기들만 오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포츠에 대한 강 회장의 관심은 남다르다. 실제로 하는 것도 즐긴다. 축구 테니스 골프 등은 수준급이다. 재무부 시절엔 축구 동호회 회장을 맡아 매달 외부 팀과 경기를 했다. 지방으로 원정을 가기도 했다. 요즘엔 경기도 구리가 연고지인 KDB생명 여자 프로농구팀 경기를 종종 관람한다. 선수들과는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로 격의 없이 어울린다.

산업은행은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PEF(사모투자 전문회사)가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등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골프용품업체 아큐시네트를 인수하는 데 금융을 주선하며 딜 성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 회장은 타이틀리스트 모자와 풋조이 골프화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엔 골프채도 타이틀리스트로 바꿔 피팅까지 마쳤다.

"핸디캡은 얼마나 됩니까. 드라이버는 잘 맞습니까. " 그냥 던져본 질문이었는데 강 회장의 대답에 모두가 놀랐다. "공식 기록에서 330야드까지 쳐봤습니다. 요즘도 280야드 전후로 칩니다. "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그를 아는 사람에게 확인해 보니 맞다고 했다. 20여년째 계속하고 있는 새벽 테니스 덕분이라는 얘기였다. 거리에 대한 욕심도 많아 제대로 맞으면 280야드는 너끈히 나간다고 전했다.

밤 11시가 가까워졌다. 강 회장은 "손녀애가 빨리 오라고 했는데…"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1945년 경남 합천 △경남고 서울대 법학과 △미국 뉴욕대 경제학 석사 △행정고시 8회 △재무부 이재국장,국제금융국장 △재무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한국무역협회 상근 부회장 △기획재정부 장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대통령 경제특보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


■ 강만수 회장의 단골집 돈후이
초벌구이로 기름 뺀 대나무 삼겹살 맛 '별미'

돼지고기 전문점이다. 대나무통삼겹살이 많이 팔린다. 담양에서 가져온 대나무통에 썰지 않은 삼겹살을 2인분씩 담아 초벌구이를 해 기름을 뺀다. 손님상에 가져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다.

이걸 다시 참숯 화로불에 구워 먹는다. 2인분(400g)에 2만3000원.와인삼겹살과 고추장삼겹살은 1인분에 1만1500원,생삼겹살과 돼지갈비는 1만1000원이다. 상추와 김치는 모두 경기도 하남에 있는 사장(조형근)의 처가에서 재배한 것을 사용한다. 식사로는 '시원한 김치말이국수' '따듯한 잔치국수' '얼큰한 칼국수' '칡냉면'(각 4000원) 등이 있다. (02)3402-3333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